바흐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공연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Music/Classical 2010. 2. 24. 00:46
실황
으로 이 곡의 전곡 연주를 직접 볼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느정도 수준에 오른 바이올린 독주자라면 꼭 한번씩은 음반을 내는 곡. 그래서 음반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은 곡.

워낙에 많은 '거장'들의 연주에 익숙해 있는 청중들을 상대로 연주해야 하는 곡.

CD 두 장을 꽉 꽉 채우는, 순 플레이 시간만 두시간이 넘어가는 곡.

그래서 전곡을 듣고 나면, 듣는데 기울이는 주의만으로도 피곤하게 되는 곡.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Christian Tezlaff)의 바흐 독주 바이올린곡 전곡 연주라는 LG Art Center 스케쥴을 봤을 때,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곧장 예매를 했다. 가격대비 성능비가 최고인 제일 앞좌석으로.

금일은 그 공연 당일.


첫곡으로 연주된 소나타 제 1 번 (g BWV1001) 에서부터 느껴진 것이지만, 장식음의 사용이 여태 들어본 연주들과는 매우 많이 달랐다. 전반적으로 장식음을 좀 많이 사용한 것 같았다. 리듬 또한 처음 접하는 리듬인데, 이것은 단순한 템포의 문제가 아니라 리듬의 강약, 당김이 근본적으로 다른 연주들과는 달랐다.


'선입견'
이라는 것은 아주 무서운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들을 수십회 이상 청취하는 동안 '이 곡은 이래야 한다. 적어도 이정도의 차이라면 수용할 만 하다' 라는 선입견이 머릿속에 생겨 있었던 모양인지, 오차 허용 범위 내에 들어오지 않는 정보들을 접하니 별안간 뇌 속에서 "어라?" 하는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느낌. "아뿔싸! 테츨라프의 최근 녹음을 구해서 좀 들어 보고 올 것을" 이라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어찌 되었건, 한음 한음 주의깊이 듣고 있는 와중에 어느덧 첫번째 세션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테츨라프 씨는 퇴장을 한다.

LG Art Center 공연장의 울림이 그렇게 풍부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텁텁한 녹차와 같은 맛이 있는 셰링이나 시게티, 하늘하늘하면서도 가련해서 깨질 것 같은 음의 마르치의 연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울림 (정말 울림) 이 나와 버려서, 한편으로는 약간 달달한 음을 듣게 되었다. 어쩌면 레이첼 포저가 교회당에서 연주해서 녹음한 음반의 소리보다 더 울림이 풍부했는지도 모르겠다.


'달린다'
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물론, 늦추어 줄 때는 확실하게 늦추어 주고, pp 도 정말 아련하게 pp 로 표현을 잘 해 주어서 (pp와 템포는 무관한 개념이지만.. ^^;;) 더더욱 '달린다'는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많이 달린 것은 사실이다. "하이페츠 옹도 아니면서... 이렇게 달리다니!"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달렸나?

19:30 에 시작한 공연이 22:10 경에 끝났다. 공연이 끝나고, 담배를 한대 피우고, 지하철 역삼역 아래까지 내려와서 지하철 승차하기 직전에 통화를 했는데, 그 통화 시각인 22:24 에서 대략 담배 한대 피우고, 느긋하게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해서 플랫폼까지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인 15분을 뺀 시각을 공연 종료 시각으로 잡았다. 계산하면, 공연 종료는 대략 22시 10분이 된다.

19:30 부터 22:10 까지 공연. intermission 30 분을 제외하면 플레이 타임은 2시간 10분, 곡간에 나오게 되는 박수, 그치지 않는 박수에 따라 연주자 무대 등장 후 인사 그리고 퇴장, 다시 등장, 박수, 연주 등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는 박수의 시간, 게다가 마지막은 커튼콜을 5번 가량 했으니... 실제 플레이 타임은 2시간이 모자라게 된다.

그럼,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는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리는가?
부족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들의 연주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

Rachel Podger 의 녹음은 139분 --> 약 2시간 20분.
셰링의 녹음은 129분 --> 약 2시간 10분.
마르치의 녹음은 139분 --> 약 2시간 20분
테츨라프의 오늘 공연 --> 2시간 미만. 오차 범위 5분을 고려하더라도 2시간 정도.

어... 엄청나게 달렸다.

특히, 소나타 3 번의 Fuga 부터 이어지는 파르티타 3 번까지는 화장실이 급한가... 싶을 정도로 달렸다. 이처럼 빠른 템포로의 연주는 시대악기 연주의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무지한 자의 헛짐작도 해 본다. 그렇지만, 무작정 달리기만 하진 않았는데, 그것이,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pp 를 정말 정말 잘 표현해서, 완급의 조절이 아주 절묘했다고 할까, 적절했다고 할까, 연주를 할 때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뚜렷이 받았다. "나는 내 의도가 있어서 연주하고 있으니 알아 주시오!" 하고.

훌륭한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서울에 사는 자의 복이 아닌가 한다.


연주자와 불과 3-4미터

오늘의 공연은 좋았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같은 대곡의 연주를 직접, 내 눈과 귀로 보고 들었다는 것에서 감동이었다. 좌석도 맨 앞줄이라 연주자와의 거리는 불과 3-4미터. 운지하는 손가락이 네크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탁 탁' 하고 들릴 정도로 가까운 자리였으니 연주의 생생함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좋았다. 게다가, 연주자의 눈에 곧장 비쳐버리는 자리에 앉아 있으니 움직임 하나, 고개 끄덕임 하나까지도 조심하게 되어 버려서, 2시간이 넘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한번에 피로가 확~ 하고 몰려왔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가장 좋아하는 소나타 3번과 파르티타 3번이 마지막 곡이라 마지막까지 집중이 가능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 준비의 소홀함이었다. 이같이 드물고 좋은 공연을 미리 음반도 들어본다든지 하는 준비를 하고 왔었다면 200% 즐길 수도 있었을 텐데, 우물안 개구리마냥 '이미 수십번 들었고 전곡을 외울 정도인데, 따로 또 들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있겠지' 라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는 실수를 해 버렸다. 아주 많이 아쉬울 따름이다. 돌이켜 교훈으로 삼도록 하자.


아래는 오늘 공연의 곡 편성이다 :

  1. 소나타 1 번 g, BWV 1001
  2. 파르티타 1 번 b, BWV 1002
  3. 소나타 2 번 a, BWV 1003
  4. intermission
  5. 파르티타 2 번 d, BWV 1004
  6. 소나타 3 번 C, BWV 1005
  7. 파르티타 3 번 E, BWV 1006

프로그램 해설지 (3,000 원이나 했다. 다른 공연의 프로그램에 비하면 싼 편인가?) 에 의하면, 연주 순서를 위와 같이 정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J.S.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연주회에서 듣는 것은 대단히 보람있고 감동적인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여정 속에서 형식과 감정이 발전하는 양상은 개개의 곡을 감상하는데 더욱 충실한 의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현인 G 와 g단조 소나타 1번으로 시작하여 b단조, a단조, d단조와 C장조를 거쳐 바이올린의 가장 높은 현인 E를 풍부히 사용하는 찬란한 E장조 파르티타로 마무리를 하면서 바흐는 어둠에서 빛으로의 변모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최정점은 두번째 파르티타의 간절한 d단조 샤콘느를 세번째 소나타 C장조의 장엄한 푸가와 나란히 위치시키는 곳입니다. 이 두 웅장한 악장 사이에는 소나타 3번을 시작하는 아다지오가 마치 주인없는 땅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아다지오는 샤콘느와 동일한 박자와 느린 템포로 쓰여졌으며 샤콘느의 종결마디와 같은 음역으로 시작합니다.

실제로 바흐는 다섯 번째 마디에서 벌써 d단조로 돌아가 버립니다! 첫번째 완전 종지는 g단조로 되어 있습니다. C장조는 지배적인 조성임에도 불구하고 이 악장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을 듯 합니다. 샤콘느의 그늘이 너무도 커서 아다지오 악장이 거의 끝날 때까지도 앞선 4곡이 속한 단조의 세상으로 음악을 계속하여 끌고 가는 듯 합니다. 결국 마지막이 되어서야 마치 마술처럼 푸가가 시작할 수 있도록 하나의 음형이 문을 열어줍니다. 이전에는 바이올린에게 그러한 환희 넘치는 표현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전곡을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어쩌면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다음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여정의 핵심을 알기 위해 d단조 파르티티와 C장조 소나타를 휴지없이 들어보실 것을. 만일 그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샤콘느와 C장조 소나타만이라도...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음반 J.S.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핸슬러) 라이너 노트에서
* 글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이전에 바흐의 바이올린 독주곡에 관해 적어 본 글 : Violin Sonata No.3 BWV 1005, Violin Partita No.3 BWV 1006 / J.S.Bach 그리고 요한나 마르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