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 지방 여행 - 첫째날

여행 2010. 5. 19. 01:49

사건의 발단은 2009년 말, 대명 리조트로 보딩을 즐기러 간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욕심 없이 잘 사용하고 있던 담배갑만한 크기의 IXUS 80IS 를 분실했다. 지인 중 본인의 "정신 분실증" 의사 증상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분과는 달리, 난 물건 - 정신도 물건이라면 - 을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행사를 기획한 당사자였던 데다, 함께 간 사람이 거의 30명에 이르렀던 터라, 정신을 차려 보니 애지중지하던 녀석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 후 금전적 상실감과 정신적 충격은 무려 3일간 스스로 자책감에 시달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 후 계속 새 사진기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오던 중, 똑딱이의 최고봉이라는 lx3 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lx3 은 당시 구하기가 매우 힘든 기종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panasonic 의 gf1 이 자주 들리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대세가 되는 것을 보게 되고,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g*켓에 주문을 넣게 되었다. 이제나 저제나 물품이 배송되기만을 기다리기를 무려 한달, 주문은 기간 오버로 자동 취소 되어 버리고, 국내에서는 물량이 없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고생 끝에 구입한 나의 gf1. 어떤가, 욕심날 만큼 이쁘지 않은가?!


왜인지 gf1 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이녀석을 손에 넣지 않고서는 다른 일에 도지히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태를 흔히들 "지름신이 강림했다"라고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서 일본 amazon 에 주문을 넣으려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이녀석이 정말 우습게도 국내에서 판매되는 정품을 구입할 경우 무려 12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고, 게다가 흰색이나 분홍색일 경우 5 - 10 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 정말 황당한 가격인데 비해, 일본의 정가는 7만 3천엔 정도 (환율 1,200원으로 계산해서 87만 6천원) 라는 것이다. 게다가 카메라 전문점인 요도** 홈페이지에서 가격을 조사해 본 결과 일본의 골든 위크를 맞이한 세일을 실시해서 6만 8천엔 (81만 6천원) 의 할인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 전자제품의 내수품은 해외 배송이 불가능하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발견하고서는 잠시 좌절하고 구입을 포기하려 했다.

미국 아마존에 알아 보았으나 미국도 한국과 사정은 별반 차이가 없어서 무려 1,200 USD 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더욱 더 애가 탄 나는 급기야 일본행 비행기표의 가격을 알아보게 되었고, 일본에서 구입시 국내 정가와의 차액으로 일본행 왕복 항공기 표를 구하고도 10만원이 남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일치기 일본행을 고민했다.

그런데, 나는 고민이 있으면, 고민을 입 밖으로 내어서 말한다든지, 주변에 마구 떠들어 댄다는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마침 당일치기 일본행으로 카메라를 구입할까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을 떠들어 대는 것을 발견한 회사 동료 K군.

"일본 가는 길에 관광까지 하고 오면 본전 + 알파를 뽑을 수 있겠군요. 저도 같이 갑시다. 저도 카메라 사야겠어요."

마침 옆에 있던 회사 큰누님 P양.

"어머, 그럼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그래서 급박하게 일본행이 결정되었고, 관광을 하러 갈 바에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중론에 행선지를 교토 부근의 오사카로 정하게 되었다. 


항공권 구입과 스케쥴 작성을 끝내고 드디어 공항. 인천발 간사이 국제공항행 OZ114 편 여객기에 이처럼 황당한 동기로 의기투합한 세명의 선남(?)선녀(?)가 몸을 싣게 된 것이다.


요도**카메라 우메다(梅田)점. 2인의 황당한 청년과 1인의 처녀, 그리고 지름신이 디지털 카메라 매장에 출현했다. 출발 전 홈페이지의 정가 표기가 골든 위크가 끝남에 따라 68,000엔에서 73,000엔으로 올려져 있던 것에 우울하던 2인의 청년은 매장의 정가 표기가 68,000엔으로 되어 있었던 데에 크나큰 안식을 느꼈다. 게다가, 그동안 공부해 왔던 일본어를 써서 매장 직원과 협상하여 상당한 폭으로 할인을 받는 큰 기쁨까지 느끼게 되었다. 일본어 공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_+)) 옆에서 협상을 계속하도록 나에게 줄기차게 압박을 가해 준 K군에게 이 쪽글을 빌어서 감사한다.

아무튼, 예상치도 못한 싼 가격에 지름신을 만족시킬 수 있었던 K군과 나. 

신 났다.

정신 없다.

너무 기쁘다.

곧장 타마즈쿠리(玉造) 역 근처에 있던 숙소 U-EN 으로 향했다. 이 숙소, U-EN 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냥 일반적인 게스트 하우스인데, 두번째와 세번째 밤을 보냈던 숙소인 J-Hoppers 의 차갑고 성의없는 고객 응대와는 달리 아주 친절하고 따듯하게 맞아 주어서 참으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건물은 상당히 오래된 건물을 안쪽만 레노베이션 한 듯 했다. 에어컨의 소리가 매우 시끄러워서 더운 여름철의 숙소로는 적당하지 않아 보였으나, 봄, 가을철의 숙소로는 아주 그만이었다. 물론, 비싼 돈을 들인다면, 더 좋은 숙소도 있겠지만, 그정도의 가격에 여기만한 숙소는 없지 않나 싶다. 또한, 일본 서민들의 가옥 구조가 어떻다는 것을 약간이나마 비슷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될 듯 하니, 좀 불편하더라도 U-EN 에서의 1박은 꽤나 괜찮은 체험이 될 것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키를 건네 받은 후, 우리는 곧장 난바(難波) 역 근처의 도톤보리(道頓堀)로 향했다. 오사카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간다는 이치바즈시( 市場ずし)에서 저녁 식사.



이번 여행에서 특히 신경을 쓴 것은, 가급적 일본의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들 중 한국의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을 찾아 가서 먹는 것이었다. 물론, 이치바즈시(시장스시)는 하도 많이 알려지고,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들 가서 먹는 곳이지만...

시장통에서 고된 하루 일과가 끝나고, '오늘은 좀 호사스러운 걸 먹어 볼까' 하는 생각에 들러서 맥주 한잔과 함께 서민들이 즐기는 그런 분위기인 가게인 듯 해서 선택하였다. 물론, 100엔 스시집도 있지만, 그정도로 싼 것 보다는 좀 제대로 된 스시를 먹어 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결국 가격은 꽤 많이 나왔지만 (약간 늦은 시각이라 다들 주려 있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맛을 볼 수 있었다. 밥으로 승부한다는 한국의 스시집 은***골의 밥보다 더 맛있는 밥에, 신선한 회가 올려진 스시의 맛은 설사 일행이 모두 배를 곯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감탄할 만한 맛이었다. 한국의 스시 체인점 중에 스시히로바라는 체인점이 있다.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 그러나 맛은 오사카 시장 구석의 허름한 이 가게의 스시 맛 보다 훨씬 못하다는 생각이다. 1인분에 10만원을 넘는 일식 코스 요리에서 나오는 스시도 이 가게의 것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미스터 초밥왕에서도 볼 수 있지만, 스시의 기본은 밥. 바로 이 밥이 달랐다. 젓가락으로는 집어올리기 약간 어려울 정도의 밥이었다. 물론, 재료의 선도, 조리법도 큰 차이가 나는 듯 했다. 직접 먹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히히히히.

식사를 마치고, 도톤보리를 왔다갔다 하며 타코야키를 먹었는데, 진짜 타코야끼였다. 큼직한 문어가 씹힐만큼 들어 있는! 그에 비해 한국의 타코야끼는 -_-;; 문어가 발가락의 때를 좀 벗기다 만 반죽으로 만든 듯 하다. 


웹 상에 있는 여러 오사카 여행기를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위 사진에 찍힌 간판. 

이 간판을 찍은 다리를 건너면서 유난히 거기서 노닥거리는 남녀가 많다는 느낌, 삐끼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귀국 후 일본어 수업 시간에 일본어 강사에게 이 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속칭 힛카케바시(ひっかけ橋)라고 불리우는 다리인데, 일본어의 힛카케루 (ひっかける) 는 원래 물건을 어딘가에 건다는 의미인데, 손가락 등을 누군가의 옷자락에다가 걸고서 그 사람을 잡아 채 간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그래서, 이성을 꼬신다는 의미까지 사용되는 말이다.

이 다리 언저리에서는 난파 (우리말로 헌팅에 가깝지만, 원나잇 스탠드까지 바랄 수 있는 다소 그런 의미로, 헌팅과는 약간 다름) 를 그렇게 많이들 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난파 당하기 위해 저 다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래서 다리 이름이 그랬던 것이다. 물론 정식 이름이 아니다. 오사카 출신의 일본인 강사인지라 이같이 오사카 주민들만 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유난히 잘 차려입은 이케맨(잘생긴 남자)이나, 갸루, 예쁜 여자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였나 보다. 


그 후 다시 타마즈쿠리 역 근처의 숙소로 들어와 첫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첫날은 간사이 지방의 지하철 시스템을 익히느라 아주 힘든 날이었다. 역은 또 왜 그렇게 넓은지 ㅠㅠ

이틀째, 사흘째, 나흘째의 여행 기록은 또 시간이 나면 올리도록 하겠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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