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 지방 여행 - 둘째날

여행 2010. 5. 23. 19:56

임잰왜란(1592), 병자호란(1636), 일제 강점기(1910 - 1945), 6.25(1950 - 1953) 등, 한반도의 역사는 편할 날이 없었다. 전쟁의 와중에 귀중한 문화재가 파괴되고 불타 없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특히나 일제 강점기에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일본땅으로 수탈되어 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반도 전체를 휩쓸었던 6.25전쟁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파손되거나 불타 없어져 버렸다.

작년과 재작년의 여행길에 봤던 많은 유적들중 그나마 복구가 잘 이루어진 것도 있었지만, 목조 건물이나 탑 등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정림사지 5층 석탑처럼 휑한 벌판 한가운데 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감은사지 3층석탑

감은사지 3층석탑

정림사지 5층 석탑

정림사지 5층 석탑

정림사지 5층 석탑

황룡사터


왼쪽부터 경주 근처 촌구석에 담장도 없이, 관리인도 없이 버려져 있는 감은사지 3층 석탑. 저녁무렵에 찍은 거라 밝기 조절 했음. 정림사지 5층 석탑. 가운데 자세히 보면 탑이 있음. 클릭해서 크게 보면 그나마 잘 보임. 맨 오른쪽은 황룡사터. 클릭해서 보면 다 타서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아 있는 황량한 벌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유적지 주변에 화려하게 담장 같은걸 들이 치고, 상점이 생기고 등등 인공적으로 너무 많이 꾸며 놓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 오히려 감은사지 3층 석탑과 같은 경우는 너무나도 좋았다. 완전히 자연과 하나가 되어서 풍경의 일부로 녹아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아.. 여기서 예시하고자 하는 것은 돌탑만 남고 다 타서 사라져버린 유적이었지...


그에 반해 아침 여섯시에 오사카 숙소를 나와 향했던 히메지성은 그 원형이 너무 잘 보존되어 있었던 터라 한국의 많은 문화재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생각나서 화가 난다고 해야 할까, 샘이 난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야릇한 기분이 되었다.

영문 위키피디아 : http://en.wikipedia.org/wiki/Himeji_Castle
일문 위키피디아 : http://ja.wikipedia.org/wiki/%E5%A7%AB%E8%B7%AF%E5%9F%8E

히메지 역 근처에서 자전거를 대여했기 때문에 히메지 성까지의 이동은 매우 수월했다.


이 성은 무려 2차 대전 폭격시에도 폭격을 받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하나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성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천수각을 보수 공사하고 있는 중이라 내부까지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드라마 공명의 갈림길(功名が辻)을 생각하면서 내부에도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당일 계속 비가 내렸기 때문에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하였다. 건질만한 사진이 많이 없어서 약간 거시기함.


히메지 성을 뒤로 하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 고베로 향했다.

고베는 고베 특산의 쇠고기로 유명하다. 고베규(神戸牛)로 만든 스테이크를 맛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 목적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히메지시에서 약간 늦게 출발을 하여서 고베시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시 10분경. 미리 알아 둔 스테이크 전문점의 런치 타임이 오후 세시까지였기 때문에 약간 서둘러서 이동을 했다. 

그러나 레스토랑이 있다고 하는 주변을 아무리 헤매도 레스토랑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세시를 넘겨 버리고. 일행은 결국 다른 레스토랑을 찾아서 고베 산노미야 역 북쪽에 있는 이진칸(異人館) 거리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안내 책자에 나온 지도와 실제의 지도가 너무나 달라서 두번째의 레스토랑도 찾을 수 없었다. 고픈 배를 안고 허둥지둥 꽤나 많은 거리를 헤맨 탓에 모두들 신경이 약간씩 곤두서 있는 상태였다.

때마침, 고베에서 식사 후 마시려고 했던 니시무라 커피점의 한 분점을 발견하고서는 모두들 차와 케잌이라도 먹고 쉬었다 가자는 데 뜻을 모으게 되었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본점이었는데, 본점의 별다방스러운 인테리어와는 달리 이곳의 인테리어는 회원제 고급 살롱의 분위기였다. (실제로 1995년 고베 대지진까지는 회원제 찻집이었는데 그 이후 일반에게도 개방하게 된 곳임) 여행 와서 생각지도 못하는 호사를 누리고서는 모두들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이라는 것이 예정된 계획대로만 간다면 오히려 재미가 없을 것인데, 이렇게 좀 헤메 주고 덤벙거려 주어야 여행이 더 재미있어지고, 기억에도 남는 여행이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분위기 좋은 찾집에서 모두들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느긋하게 걷다 보니 서두를 때는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그 스테이크집을 찾게 되어서 이번 여행 두번째 호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 마블링을 보라


아래에 받힌 빵은 피를 흡수하는 용도와 철판의 열로부터 고기를 보호하는 용도.


이 고베 소는 가격이 꽤나 비쌌는데, 과연 유명한 만큼 비싼 돈 주고 먹을 만 했다. 앞으로 이정도로 맛있는 스테이크 먹어 보기는 힘들거라고 생각된다. 동일한 가격을 주고 한국내의 웬만큼 스테이크 잘한다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는다 해도 이런 맛은 안나온다. 입에 넣고 혀로 살짝 눌러도 입안 가득 배어 나오는 육즙. 부드러운 육질. 역시 스테이크는 고기 자체의 맛이 가장 중요한 듯 하다. 망했다. 앞으로 먹는 스테이크들에 감동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호사스러웠던 이틀째의 일정을 마치고, 교토의 숙소로 향했다.

두번째와 세번째 밤의 숙소였던 J-Hoppers 는 나름 한국내의 일본여행자들 사이에서 괜찮다고 평이 나 있는 모양이지만, 바로 전날 묵었던 숙소의 영향인지, 오히려 불편하고, 성의없이 느껴졌다. 역시, 체인점으로 해서 대충 운영하는 숙박업체와 주인이 직접 집을 가꾸고 정성을 들여 운영하는 숙박업체와는 손님이 느끼는 체감 온도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마련인 게다.

이전에도 도쿄에는 여러번 왕래가 있었지만, 모두 일 관계의 출장이라 골목 구석구석까지 돌아 보진 못했지만, 이번에 놀러 와서 골목의 구석구석을 돌아 보고는 크게 한가지 느낀 점이 있다. 거리가 정말 깨끗하다는 것이다. 쓰레기가 버려져 있느냐 아니냐 정도의 깨끗함이 아니다. 뭔가 차원이 다른 깔끔함이 느껴졌다. 4일간 보고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은 매일 아침 자기 집 앞이나 가게 앞에 물을 뿌리고 청소를 하더라는 것이다. 남의 집에 잠시 들어와 살 뿐인 집이 아니라 '자신의' 집, '내 집' 이니까 내 집 앞은 내 얼굴과 같다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물을 뿌리고 청소를 보도블록 칸칸이까지 싹싹 쓸어 주는 꼼꼼함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마찬가지이다. 체인점인 J-Hoppers 에 근무하는 종업원은 자기 가게가 아닌것이다. 손님을 대충 대해도 된다. 그 손님이 다시 찾아 주든 말든 자기와는 관계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첫날 숙박했던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숙소의 종업원에게는 그 가게가 자기 가게인 것이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손님을 대해서 그 손님이 돌아간 후 다시 찾아주거나, 좋은 평판이 생기면 그게 다 자기 이익으로 돌아오게 된다.

각설하고, 교토 역 부근의 숙소에서 두번째 밤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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