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는 원래 필름 카메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연한 이야기. 그러다 20세기 말엽, 기술의 발전으로 아날로그 매체인 필름이과 현상이 아닌 광학 센서에 맺힌 빛을 디지탈화 (digitize) 해서 컴퓨터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했다. 당시까지 사진 작가들 사이에 가장 널리 쓰이던 일안 반사식 카메라 (Single Lens Reflex : SLR) 에 필름이 들어가던 부분에 필름 대신 광학 센서인 CCD 를 부착한 녀석이 DSLR 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초점 거리를 환산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렌즈를 통해 입사한 빛이 최종적으로 "맺"히게 되는 매체가 변했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중요한 것은, 디지털 카메라, 필름 카메라 등 최종적으로 상이 맺히는 매체의 종류에 관계 없이 매체의 "크기"이지만 말이다.
우선, 카메라에 상이 어떤 모양으로 맺히는지 그림을 통해 살펴 보도록 하자 :
필름 카메라에서 쓰이는 필름들은 그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그 중 35mm 필름 (36 x 24mm) 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반면, 디지털 카메라에서 사용되는 CCD 역시 그 규격이 매우 다양한데,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이미지 센서 규격인 APS-C 를 채택한 카메라들은 35mm 필름의 사이즈보다 꽤나 작은 크기의 CCD 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full frame" 크기의 CCD 를 사용하는 DSLR 도 있는데, 엄청나게 고가품이며, 이런 DSLR 은 동일한 초점거리의 렌즈를 사용해 사진을 찍었을 경우 35mm 필름을 사용하는 SLR 과 동일한 화각을 지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즉, 디지털 카메라는 일반적으로 상이 맺히는 부분이 필름 카메라보다 작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위의 그림에 상이 맺히는 부분이 작은 경우를 추가해서 그려 본 아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
상이 맺히는 부분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위 그림에서 보듯이 35mm 필름에서 찍히는 사진에 비교해서, 변두리 부분이 잘려 나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 화면에 대상체의 보다 적은 범위가 표시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번의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듯이, 초점 거리가 길어질 수록 화면에 들어오는 풍경은 좁아진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즉, 피사체의 상이 맺히는 부분이 줄어들어서 화면의 일부가 잘려 나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얻게 되는 사진에 나타나는 변화는 마치 초점 거리가 보다 긴 렌즈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 변화의 정도, 즉, 촬영된 이미지가 "마치" 35mm 카메라에서 초점거리 얼마인 렌즈를 사용해 찍은 것과 비슷한가에 대한 비율을 FLM (Focal Length Multiplier) 라고 하며, 이는 종종 crop factor 락고도 부른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gf1 은 센서의 규격이 4/3" (Four-thirds) 이므로, 위 표에 의하면, 2.0 의 crop factor (FLM) 를 가진다.
즉, 내가 초점거리 20mm 의 렌즈를 사용해서 찍은 사진은 "마치" 35mm 필름 카메라에서 초점거리 40mm (20mm x FLM = 20mm x 2.0 = 40mm) 의 렌즈를 사용해서 찍은 사진과 비슷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렌즈는 어떤 카메라에 장착되었든지 간에 동일하게 동작한다는 것이다. 단지, 센서의 크기로 인해 확대 "효과" 를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렌즈가 다르기 때문에, 찍히는 풍경의 범위는 동일하더라도, 심도, 원근감 등은 35mm 필름 카메라의 초점 거리로 환산했을 때 나오는 초점 거리의 렌즈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의도치 않은(?) 확대 효과로 인해 손떨림의 영향이 보다 커지게 되므로 이도 주의해야 할 사항이 되겠다.
그러나, 사진을 머리로 찍는 것은 아니니, 위의 쓸데 없이 긴 설명들은 다 필요 없는 것이 되겠다.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정도라고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의 센서와 렌즈의 심도, 원근감 특성을 수많은 촬영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것이 되겠다.
끗.
횡설수설, 발로 적은 내 포스팅보다, 아래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참조하는 편이 정확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최근 구입한 gf1 으로 인해 카메라에 많은 궁금증이 생겼고, 나름대로 그 궁금증을 잘 풀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알게 된 자투리 정보들을 정리할 차례.
웹을 찾아보거나 책을 보면 알기쉽게 설명된 자료도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내가 똑같은 정보를 이곳에 포스팅하는 것은 중복된 정보의 반복으로 인한 쓰레기 정보의 양산에 지나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딱히 할 일도 없는 처지에, 재미삼아 정리해서 중복되는 정보를 웹상에 몇페이지 더 추가해, 사진과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는 네티즌(!)을 더 혼란에 빠뜨려야 하겠다.
초점거리의 개념과 망원 렌즈, 광각 렌즈의 개념은 단어만 들어도 이해될 만큼 쉬운 개념이지만, 아주 정확하게 이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었다.
초점 거리는 쉽게 말해서 렌즈로부터 그 렌즈를 통과한 빛이 한 점에 모이는 점, 즉, 초점까지의 거리이다. 이처럼 동어 반복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쉬운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렌즈에 대해 이야기할 때, "14미리 렌즈", "80mm 렌즈" 와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몇 미리" 라고 하는 것이 바로 초점 거리이다.
"표준 렌즈 (Normal Lens or Standard Lens)" 는 사진을 찍은 결과물의 원근감, 시야각이 사람이 가장 "자연스럽다" 고 느끼게끔 나오는 렌즈이다. 즉, 이 렌즈로 찍은 사진은 육안으로 보는 장면과 가장 흡사한 장면을 보여 준다. 35mm 카메라 (여기서의 35mm 는 렌즈의 초점 거리가 아님) 를 사용할 경우, 45mm 혹은 50mm 렌즈가 표준 렌즈의 초점 거리가 되겠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gf1 같은 micro four thirds 카메라는 22mm 렌즈. 캐논의 EOS 400D 처럼 APS-C 카메라는 27mm 정도의 초점 거리를 가진 렌즈가 표준 렌즈가 된다. 이와같은 기종에 따른 표준 렌즈들의 초점 거리의 차이가 왜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표준렌즈보다 초점 거리가 짧은 렌즈들을 "단초점 렌즈", 긴 렌즈들을 "장초점 렌즈" 라고 일반적으로 부른다.
초점 거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에 그림을 그려 보았다 :
그러면, 이제, 초점 거리가 사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가장 확연하게 눈에 띄는 영향으로는 렌즈에서 동일한 거리에 있는 물체를 찍을 때, 한 화면에 들어오는 범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을 보자 :
따라서, 같은 거리에서 사물을 찍을 때, 초점 거리가 긴 렌즈는 사물의 비교적 좁은 부분만 찍히는 반면, 단초점 렌즈는 비교적 넓은 부분이 찍힌다.그러면 이제, 단초점 렌즈를 "광각렌즈" 라고도 하는지 쉽사리 이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초점이 짧을수록 화각이
크니까 그런 것이다.
아래의 두 사진은 피사체와 동일한 거리에서 각각 표준 렌즈 (20mm), 장초점 렌즈(45mm)로 촬영한 사진들이다. 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이, 사용한 렌즈의 초점 거리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찍히는지를 확인해 보자. 히메지 성 초입에서 찍은 천수각의 사진이다 :
20mm 렌즈 (135 로 환산시 40mm) 로 촬영한 히메지성
45mm 렌즈 (135 로 환산시 90mm) 로 촬영한 히메지성
초점 거리에 따른 변화는 피사체의 범위 뿐만 아니라 사진에 나타나는 원근감 (perspective) 에도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단초점 렌즈일 수록 원근감이 극적으로 표현되고, 장초점 렌즈일 수록 원근감이 밋밋하게 표현된다. 아래 사진을 비교해 보면 차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광각렌즈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표준 렌즈로 찍은 사진과 인물을 찍기 적합할 정도의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을 비교한 터라 약간 아쉬움이 있지만 초점 거리에 따른 원근감의 차이는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20mm 렌즈로 촬영
45mm 렌즈로 촬영
위의 두 사진은 각각 20mm 렌즈와 45mm 렌즈로 동일한 장소 (육교 위) 에서 촬영한 고베 시가지이다. 그림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듯이 초점 거리가 짧을 수록 멀리 있는 물체는 더욱 멀리 있는 것 처럼 찍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광각 렌즈 (10mm 정도의) 가 있어서 그 렌즈로 사진을 찍었다면 원근감은 더욱 더 극적으로 되어서, 정면에 보이는 흰색 건물은 거의 점처럼 찍히는 대신 좀 더 넓은 범위의, 20mm 렌즈에 찍히지 않은 부분의 풍경까지도 찍혔을 것이다.
이 외에도 초점 거리는 사진의 "심도"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심도는 하도 영향받는 요소가 많아서 (초점 거리, f 값, 피사체와 렌즈와의 거리)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한다. 다만, 초점 거리가 짧을 수록 사진에 표현되는 심도는 상대적으로 깊어진다는 것만 이야기해 두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자, 그럼 이제 초점 거리의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했고, 초점 거리에 따라 사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확인했으므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동기가 되었던 아래의 문장을 해석할 준비가 되었다 :
"gf1 에 딸려 나오는 20mm 렌즈는 필카로 환산하면 40mm 렌즈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자세한 것은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므로 다음 기회에 계속해서 적기로 하고, 이만 여기서 포스팅을 마치겠다.
넷째날의 일정은 은각사()를 둘러보고 요지야 카페 은각사점에서 차를 한잔 마신 후 귀국하는 것이다.
애초에 일정을 정할 때, 은각사(銀閣寺 - 긴카쿠지)를 갈지 금각사를 갈지를 두고 고민을 했다. 일어 회화 학원의 강사가 오사카 출신이라 물어 보았더니 자신은 은각사가 훨씬 좋더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믿고 은각사를 둘러보기로 결정, 근처에 요지야 카페도 있으니 일석이조이다.
우리나라의 사찰들과는 많이 달랐다. 물론 은각사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찰이라기보다는 신사에 보다 가까운 듯 했다. 우리나라의 사찰은 다들 알다시피 칸칸이 나누어진 구조로 전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은각사를 둘러보고 느낀 점은 전각을 중심으로 했다기보다, 정원을 중심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건축사 등에 관한 지식이 전무한 일반인의 눈에 비친 기준이다. 그러고 보니 경황중에 우리나라의 사찰과 비교해서 좀 더 자세히 둘러 보는 것을 빼 먹은 것 같아 이제와 많이 아쉬움이 느껴진다.
아무튼, 정원은 정말 기가막히게 잘 만들어 두었다. 이 절도 오랜 세월동안 훼손되지 않은 채, 교토 시민들과 함께 살아와서 그런지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다. 정원에는 이깨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은각사를 나온 후 유명한 요지야 카페에 가서 녹차라떼를 시켜 먹었다.
요지야 카페는 아라시야마에도 있지만, 굳이 은각사점까지 와서야 찾은 이유는, 바로 위 사진에서도 보듯이 훌륭한 정원을 내다 보면서 일본식 타타미 방에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비가 와서, 비오는 정원을 내다보며 차를 마시는 운치를 즐길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이날은 날씨가 화창하게 개이는 바람에 불가능했다.
요지야 카페를 마지막으로 근처의 골목길들을 좀 둘러 보고, 칸사이 국제공항으로 출발을 했다.
교토의 버스 및 지하철 노선도, 그리고 지도는 교토 역에 있는 관광 안내소, 혹은 숙소에 문의해 보면 구할 수 있다. 이 지도가 매우 자세해서 아주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상점도 모두 문을 닫고 있는 상태였다. 키요미즈데라라는 이름과 언뜻 분위기가 비슷하게도 비오는 아침의 절 앞의 거리는 맑고 깨끗했다.
위에 보이는 길의 끝자락에 키요미즈데라가 있다.
약간은 먼 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옆의 골목길로 스리슬쩍 스며 들어가 보았다.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이 집집마다 화분으로 집 앞을 예쁘게 장식해 두었다. 집들은 낡았지만 운치있었고, 골목길은 좁았지만 쓰레기 하나,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야말로 예쁘고 아기자기한 동네였다.
느긋하게 걸어 올라간 길 꼭대기에는 목적지인 키요미즈데라가 (당연히) 있었다. 마침 수학여행 시즌이라 그런지 소학교 아이들, 중학교 아이들이 잔뜩 몰려오는 바람에 평일 오전의 고즈넉한 풍경은 즐길 수 없었다. 아이들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인솔해 온 선생님의 눈을 피해서 엉뚱한 짓을 하는 말썽꾸러기 남자아이들도 보였고, 젊은 선생님에게 수줍게 얼굴을 붉혀 가며 말 거는 여자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군것질도 많이 하더라 ㅎ_ㅎ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소음이 잦아질 때 쯤 일행은 버스에 몸을 싣고 다음 목적지인 점심식사를 할 식당인 이이무라(いいむら)로 향했다. 물론, 버스를 이용했다. 일본의 버스 기사분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오늘의 이이무라 정식은 타케노코고항(筍ご飯 - 죽순밥, 발음이 맞나 모르겠다)과 민치카츠(ミンチカツ) 였다. 알맞게 뜸 들인 밥에 잘 익은 죽순이 섞여 있어서 입에 넣으면 상큼한 죽순향과 약간 간간한 밥의 맛이, 밥 만으로도 너무나 맛있게 느껴졌다. 돈까스의 일종으로 보이는 민치카츠는 또 어떠한가! 튀김과 속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으며, 이같은 커틀릿 - 일본식 커틀릿에 뿌려져 나오는 소스 (데미그라스 소스라고 하나?) 의 맛과 향을 싫어하는 나이지만 아무런 거부감 없이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소스가 정말 일품이었다!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하여서 사진을 찍지 못했기 때문에 위의 링크에 있는 사진으로 어떤 음식인지 가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아라시야마로 가서 즐거운 산책을 하였다.
원래는 호즈가와 구다리 나룻배 체험을 할 예정이었는데, 비가 심하게 오는 바람에 그 일정을 취소했다. 그랬더니 시간이 많이 남아서 다음날의 예정이었던 미타라시 당고를 먹기위해 205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실수를 하나 했다. 바로 다른 미타라시 당고를 먹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집의 당고를 먹으러 가는 바람에 진정 이 집의 맛이 뛰어난지 어떤지를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은 꼭 비교해서가 아니라 음식 그 자체로도 맛있는 법. 일행 세명 모두 맛나게 당고를 먹고, 한접시 더 시켜서 먹었다. 봄 한정판이라는 꽃떡도 시켜 먹어 봤는데, 역시, 당고의 맛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날의 저녁 식사는, 라멘. 교토역 옆의 신부쿠사이칸(新福采館) 본점에 가서 라멘을 먹었다. 그런데, 양이.... -0- 장난이 아니었다. 아깝지만 좀 남기는 수 밖에. 그러나 면발은 꼬들꼬들했고, 국물 또한 그다지 짜지 않아, 작은 걸로 시켰다면 아마 국물까지 후루루룩 다 마셔버렸을 것이다. 아이고.. 군침도네... 이 라멘점은 우리나라의 중국집.. 정도의 느낌이다. 이름부터 중화소바요리점이니까. 교토 내에서는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이 라면집에서도 피곤해서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아쉽다.
아, 여기 서빙하는 사람... 교토 방언으로 엄청나게 빠르게 이야기하는데, 예를 들면 우리나라 시장통 상점에서 "어섭셔~" 가 줄어서 "어ㅂ셔~" 가 되는 정도로 (군대 갔다온 사람들이면 알 거다. '김병장님' 을 '김자임~' 이라고 하는듯) 이야기를 해서... 의사소통에 꽤 애를 먹었다 ㅠㅠ
만약 다음에 교토에 또 온다면 반드시 다시 가서 맛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작은걸로(나미) ㅎ_ㅎ
임잰왜란(1592), 병자호란(1636), 일제 강점기(1910 - 1945), 6.25(1950 - 1953) 등, 한반도의 역사는 편할 날이 없었다. 전쟁의 와중에 귀중한 문화재가 파괴되고 불타 없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특히나 일제 강점기에는 수많은 문화재들이 일본땅으로 수탈되어 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반도 전체를 휩쓸었던 6.25전쟁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파손되거나 불타 없어져 버렸다.
작년과 재작년의 여행길에 봤던 많은 유적들중 그나마 복구가 잘 이루어진 것도 있었지만, 목조 건물이나 탑 등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정림사지 5층 석탑처럼 휑한 벌판 한가운데 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감은사지 3층석탑
정림사지 5층 석탑
황룡사터
왼쪽부터 경주 근처 촌구석에 담장도 없이, 관리인도 없이 버려져 있는 감은사지 3층 석탑. 저녁무렵에 찍은 거라 밝기 조절 했음. 정림사지 5층 석탑. 가운데 자세히 보면 탑이 있음. 클릭해서 크게 보면 그나마 잘 보임. 맨 오른쪽은 황룡사터. 클릭해서 보면 다 타서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아 있는 황량한 벌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유적지 주변에 화려하게 담장 같은걸 들이 치고, 상점이 생기고 등등 인공적으로 너무 많이 꾸며 놓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 오히려 감은사지 3층 석탑과 같은 경우는 너무나도 좋았다. 완전히 자연과 하나가 되어서 풍경의 일부로 녹아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아.. 여기서 예시하고자 하는 것은 돌탑만 남고 다 타서 사라져버린 유적이었지...
그에 반해 아침 여섯시에 오사카 숙소를 나와 향했던 히메지성은 그 원형이 너무 잘 보존되어 있었던 터라 한국의 많은 문화재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생각나서 화가 난다고 해야 할까, 샘이 난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야릇한 기분이 되었다.
이 성은 무려 2차 대전 폭격시에도 폭격을 받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하나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성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천수각을 보수 공사하고 있는 중이라 내부까지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드라마 공명의 갈림길(功名が辻)을 생각하면서 내부에도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당일 계속 비가 내렸기 때문에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하였다. 건질만한 사진이 많이 없어서 약간 거시기함.
히메지 성을 뒤로 하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 고베로 향했다.
고베는 고베 특산의 쇠고기로 유명하다. 고베규(神戸牛)로 만든 스테이크를 맛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 목적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히메지시에서 약간 늦게 출발을 하여서 고베시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시 10분경. 미리 알아 둔 스테이크 전문점의 런치 타임이 오후 세시까지였기 때문에 약간 서둘러서 이동을 했다.
그러나 레스토랑이 있다고 하는 주변을 아무리 헤매도 레스토랑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세시를 넘겨 버리고. 일행은 결국 다른 레스토랑을 찾아서 고베 산노미야 역 북쪽에 있는 이진칸(異人館) 거리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안내 책자에 나온 지도와 실제의 지도가 너무나 달라서 두번째의 레스토랑도 찾을 수 없었다. 고픈 배를 안고 허둥지둥 꽤나 많은 거리를 헤맨 탓에 모두들 신경이 약간씩 곤두서 있는 상태였다.
때마침, 고베에서 식사 후 마시려고 했던 니시무라 커피점의 한 분점을 발견하고서는 모두들 차와 케잌이라도 먹고 쉬었다 가자는 데 뜻을 모으게 되었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본점이었는데, 본점의 별다방스러운 인테리어와는 달리 이곳의 인테리어는 회원제 고급 살롱의 분위기였다. (실제로 1995년 고베 대지진까지는 회원제 찻집이었는데 그 이후 일반에게도 개방하게 된 곳임) 여행 와서 생각지도 못하는 호사를 누리고서는 모두들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이라는 것이 예정된 계획대로만 간다면 오히려 재미가 없을 것인데, 이렇게 좀 헤메 주고 덤벙거려 주어야 여행이 더 재미있어지고, 기억에도 남는 여행이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분위기 좋은 찾집에서 모두들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느긋하게 걷다 보니 서두를 때는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그 스테이크집을 찾게 되어서 이번 여행 두번째 호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 마블링을 보라
아래에 받힌 빵은 피를 흡수하는 용도와 철판의 열로부터 고기를 보호하는 용도.
이 고베 소는 가격이 꽤나 비쌌는데, 과연 유명한 만큼 비싼 돈 주고 먹을 만 했다. 앞으로 이정도로 맛있는 스테이크 먹어 보기는 힘들거라고 생각된다. 동일한 가격을 주고 한국내의 웬만큼 스테이크 잘한다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는다 해도 이런 맛은 안나온다. 입에 넣고 혀로 살짝 눌러도 입안 가득 배어 나오는 육즙. 부드러운 육질. 역시 스테이크는 고기 자체의 맛이 가장 중요한 듯 하다. 망했다. 앞으로 먹는 스테이크들에 감동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호사스러웠던 이틀째의 일정을 마치고, 교토의 숙소로 향했다.
두번째와 세번째 밤의 숙소였던 J-Hoppers 는 나름 한국내의 일본여행자들 사이에서 괜찮다고 평이 나 있는 모양이지만, 바로 전날 묵었던 숙소의 영향인지, 오히려 불편하고, 성의없이 느껴졌다. 역시, 체인점으로 해서 대충 운영하는 숙박업체와 주인이 직접 집을 가꾸고 정성을 들여 운영하는 숙박업체와는 손님이 느끼는 체감 온도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마련인 게다.
이전에도 도쿄에는 여러번 왕래가 있었지만, 모두 일 관계의 출장이라 골목 구석구석까지 돌아 보진 못했지만, 이번에 놀러 와서 골목의 구석구석을 돌아 보고는 크게 한가지 느낀 점이 있다. 거리가 정말 깨끗하다는 것이다. 쓰레기가 버려져 있느냐 아니냐 정도의 깨끗함이 아니다. 뭔가 차원이 다른 깔끔함이 느껴졌다. 4일간 보고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은 매일 아침 자기 집 앞이나 가게 앞에 물을 뿌리고 청소를 하더라는 것이다. 남의 집에 잠시 들어와 살 뿐인 집이 아니라 '자신의' 집, '내 집' 이니까 내 집 앞은 내 얼굴과 같다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물을 뿌리고 청소를 보도블록 칸칸이까지 싹싹 쓸어 주는 꼼꼼함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마찬가지이다. 체인점인 J-Hoppers 에 근무하는 종업원은 자기 가게가 아닌것이다. 손님을 대충 대해도 된다. 그 손님이 다시 찾아 주든 말든 자기와는 관계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첫날 숙박했던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숙소의 종업원에게는 그 가게가 자기 가게인 것이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손님을 대해서 그 손님이 돌아간 후 다시 찾아주거나, 좋은 평판이 생기면 그게 다 자기 이익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건의 발단은 2009년 말, 대명 리조트로 보딩을 즐기러 간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욕심 없이 잘 사용하고 있던 담배갑만한 크기의 IXUS 80IS 를 분실했다. 지인 중 본인의 "정신 분실증" 의사 증상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분과는 달리, 난 물건 - 정신도 물건이라면 - 을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행사를 기획한 당사자였던 데다, 함께 간 사람이 거의 30명에 이르렀던 터라, 정신을 차려 보니 애지중지하던 녀석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 후 금전적 상실감과 정신적 충격은 무려 3일간 스스로 자책감에 시달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 후 계속 새 사진기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오던 중, 똑딱이의 최고봉이라는 lx3 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lx3 은 당시 구하기가 매우 힘든 기종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panasonic 의 gf1 이 자주 들리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대세가 되는 것을 보게 되고,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g*켓에 주문을 넣게 되었다. 이제나 저제나 물품이 배송되기만을 기다리기를 무려 한달, 주문은 기간 오버로 자동 취소 되어 버리고, 국내에서는 물량이 없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고생 끝에 구입한 나의 gf1. 어떤가, 욕심날 만큼 이쁘지 않은가?!
왜인지 gf1 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이녀석을 손에 넣지 않고서는 다른 일에 도지히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태를 흔히들 "지름신이 강림했다"라고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서 일본 amazon 에 주문을 넣으려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이녀석이 정말 우습게도 국내에서 판매되는 정품을 구입할 경우 무려 12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고, 게다가 흰색이나 분홍색일 경우 5 - 10 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 정말 황당한 가격인데 비해, 일본의 정가는 7만 3천엔 정도 (환율 1,200원으로 계산해서 87만 6천원) 라는 것이다. 게다가 카메라 전문점인 요도** 홈페이지에서 가격을 조사해 본 결과 일본의 골든 위크를 맞이한 세일을 실시해서 6만 8천엔 (81만 6천원) 의 할인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 전자제품의 내수품은 해외 배송이 불가능하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발견하고서는 잠시 좌절하고 구입을 포기하려 했다.
미국 아마존에 알아 보았으나 미국도 한국과 사정은 별반 차이가 없어서 무려 1,200 USD 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더욱 더 애가 탄 나는 급기야 일본행 비행기표의 가격을 알아보게 되었고, 일본에서 구입시 국내 정가와의 차액으로 일본행 왕복 항공기 표를 구하고도 10만원이 남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일치기 일본행을 고민했다.
그런데, 나는 고민이 있으면, 고민을 입 밖으로 내어서 말한다든지, 주변에 마구 떠들어 댄다는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마침 당일치기 일본행으로 카메라를 구입할까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을 떠들어 대는 것을 발견한 회사 동료 K군.
"일본 가는 길에 관광까지 하고 오면 본전 + 알파를 뽑을 수 있겠군요. 저도 같이 갑시다. 저도 카메라 사야겠어요."
마침 옆에 있던 회사 큰누님 P양.
"어머, 그럼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그래서 급박하게 일본행이 결정되었고, 관광을 하러 갈 바에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중론에 행선지를 교토 부근의 오사카로 정하게 되었다.
항공권 구입과 스케쥴 작성을 끝내고 드디어 공항. 인천발 간사이 국제공항행 OZ114 편 여객기에 이처럼 황당한 동기로 의기투합한 세명의 선남(?)선녀(?)가 몸을 싣게 된 것이다.
요도**카메라 우메다(梅田)점. 2인의 황당한 청년과 1인의 처녀, 그리고 지름신이 디지털 카메라 매장에 출현했다. 출발 전 홈페이지의 정가 표기가 골든 위크가 끝남에 따라 68,000엔에서 73,000엔으로 올려져 있던 것에 우울하던 2인의 청년은 매장의 정가 표기가 68,000엔으로 되어 있었던 데에 크나큰 안식을 느꼈다. 게다가, 그동안 공부해 왔던 일본어를 써서 매장 직원과 협상하여 상당한 폭으로 할인을 받는 큰 기쁨까지 느끼게 되었다. 일본어 공부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_+)) 옆에서 협상을 계속하도록 나에게 줄기차게 압박을 가해 준 K군에게 이 쪽글을 빌어서 감사한다.
아무튼, 예상치도 못한 싼 가격에 지름신을 만족시킬 수 있었던 K군과 나.
신 났다.
정신 없다.
너무 기쁘다.
곧장 타마즈쿠리(玉造) 역 근처에 있던 숙소 U-EN 으로 향했다. 이 숙소, U-EN 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냥 일반적인 게스트 하우스인데, 두번째와 세번째 밤을 보냈던 숙소인 J-Hoppers 의 차갑고 성의없는 고객 응대와는 달리 아주 친절하고 따듯하게 맞아 주어서 참으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건물은 상당히 오래된 건물을 안쪽만 레노베이션 한 듯 했다. 에어컨의 소리가 매우 시끄러워서 더운 여름철의 숙소로는 적당하지 않아 보였으나, 봄, 가을철의 숙소로는 아주 그만이었다. 물론, 비싼 돈을 들인다면, 더 좋은 숙소도 있겠지만, 그정도의 가격에 여기만한 숙소는 없지 않나 싶다. 또한, 일본 서민들의 가옥 구조가 어떻다는 것을 약간이나마 비슷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될 듯 하니, 좀 불편하더라도 U-EN 에서의 1박은 꽤나 괜찮은 체험이 될 것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키를 건네 받은 후, 우리는 곧장 난바(難波) 역 근처의 도톤보리(道頓堀)로 향했다. 오사카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간다는 이치바즈시( 市場ずし)에서 저녁 식사.
이번 여행에서 특히 신경을 쓴 것은, 가급적 일본의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들 중 한국의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을 찾아 가서 먹는 것이었다. 물론, 이치바즈시(시장스시)는 하도 많이 알려지고,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들 가서 먹는 곳이지만...
시장통에서 고된 하루 일과가 끝나고, '오늘은 좀 호사스러운 걸 먹어 볼까' 하는 생각에 들러서 맥주 한잔과 함께 서민들이 즐기는 그런 분위기인 가게인 듯 해서 선택하였다. 물론, 100엔 스시집도 있지만, 그정도로 싼 것 보다는 좀 제대로 된 스시를 먹어 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결국 가격은 꽤 많이 나왔지만 (약간 늦은 시각이라 다들 주려 있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맛을 볼 수 있었다. 밥으로 승부한다는 한국의 스시집 은***골의 밥보다 더 맛있는 밥에, 신선한 회가 올려진 스시의 맛은 설사 일행이 모두 배를 곯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감탄할 만한 맛이었다. 한국의 스시 체인점 중에 스시히로바라는 체인점이 있다.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 그러나 맛은 오사카 시장 구석의 허름한 이 가게의 스시 맛 보다 훨씬 못하다는 생각이다. 1인분에 10만원을 넘는 일식 코스 요리에서 나오는 스시도 이 가게의 것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미스터 초밥왕에서도 볼 수 있지만, 스시의 기본은 밥. 바로 이 밥이 달랐다. 젓가락으로는 집어올리기 약간 어려울 정도의 밥이었다. 물론, 재료의 선도, 조리법도 큰 차이가 나는 듯 했다. 직접 먹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히히히히.
식사를 마치고, 도톤보리를 왔다갔다 하며 타코야키를 먹었는데, 진짜 타코야끼였다. 큼직한 문어가 씹힐만큼 들어 있는! 그에 비해 한국의 타코야끼는 -_-;; 문어가 발가락의 때를 좀 벗기다 만 반죽으로 만든 듯 하다.
웹 상에 있는 여러 오사카 여행기를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위 사진에 찍힌 간판.
이 간판을 찍은 다리를 건너면서 유난히 거기서 노닥거리는 남녀가 많다는 느낌, 삐끼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귀국 후 일본어 수업 시간에 일본어 강사에게 이 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속칭 힛카케바시(ひっかけ橋)라고 불리우는 다리인데, 일본어의 힛카케루 (ひっかける) 는 원래 물건을 어딘가에 건다는 의미인데, 손가락 등을 누군가의 옷자락에다가 걸고서 그 사람을 잡아 채 간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그래서, 이성을 꼬신다는 의미까지 사용되는 말이다.
이 다리 언저리에서는 난파 (우리말로 헌팅에 가깝지만, 원나잇 스탠드까지 바랄 수 있는 다소 그런 의미로, 헌팅과는 약간 다름) 를 그렇게 많이들 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난파 당하기 위해 저 다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래서 다리 이름이 그랬던 것이다. 물론 정식 이름이 아니다. 오사카 출신의 일본인 강사인지라 이같이 오사카 주민들만 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유난히 잘 차려입은 이케맨(잘생긴 남자)이나, 갸루, 예쁜 여자아이들이 많이 눈에 띄였나 보다.
그 후 다시 타마즈쿠리 역 근처의 숙소로 들어와 첫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첫날은 간사이 지방의 지하철 시스템을 익히느라 아주 힘든 날이었다. 역은 또 왜 그렇게 넓은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