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215건

  1. 2010.03.05 전 세계의 어디어디를 가 보았나요? 1
  2. 2010.03.04 덕후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 매주 챙겨보는 애니
  3. 2010.02.24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공연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4
  4. 2010.02.16 카핑 베토벤 (Copying Beethoven) / 대푸가 (Grosso Fugue) / 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 그리고, 게리 올드만(Gary Oldman) 1
  5. 2010.02.11 하워드 진 (Howard Zinn) 서거 4
  6. 2010.02.10 신형 27인치 아이맥(iMac)의 소음문제 20
  7. 2009.10.26 The danger of a single story 3
  8. 2009.10.22 Lead like the great conductors / 마에스트로 카를로스 클라이버

전 세계의 어디어디를 가 보았나요?

여행 2010. 3. 5. 20:52

여행과 관련해서 좋은 자극제가 되는 사이트를 하나 발견했다.



위 그림은 내가 여태까지 가 보았던 도시를 지도에 표시한 그림이다.

넓디 넓은 이 지구촌에서 겨우 저정도밖에 발을 딛지 않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훌쩍 유럽이나 남미, 몽골로 떠나고 싶어진다. 남반구도 좋겠지? 호주나 뉴질랜드.

올해부터는 여유가 되는 대로 (과연 될까?) 어디든 한번 떠나 보아야 하겠다.

사이트 : http://www.tripadvisor.com/

:

덕후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 매주 챙겨보는 애니

아니메, 드라마 2010. 3. 4. 00:15

작년, 그러니까 2009년 1월에 어리버리하게 시작해 버렸던 일본어 공부. 용케도 아직 계속하고 있다.

'일본어 학습을 위해서' 라는 핑계하에 얼마나 많은 드라마, 아니메를 봤던지! 이제 이미 방영이 끝난 드라마나 아니메들 중에는 더 이상 볼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지금 일본에서 방송하고 있는 아니메나 드라마를 챙겨 보기까지 하였으니, 알지 못하는 사이에 덕후가 되어 버린 듯 하다.

혼자 사는 독신남. (지인중 누군가 나를 가리켜 '독거노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아연해 하기도 했다!)
매주 챙겨 보는 아니메 5종.
매주 챙겨 보는 (일본)드라마 없음. (드라마는 JIN 이후로 그다지 보고 싶은 것이 없다. 일본의 드라마는 이제 거의 식상해지고 있다)
매주 챙겨 보는 (한국)드라마 1종.
매주 친구나 지인을 만나 나누는 담소의 시간 없음. -_-;;
회사 외의 사회 생활은 일본어 회화 학원 외에는 없음. -_-;;

덕후로다 덕후.


게다가, 이처럼 덕후 인증 뻘글까지 작성했으니, 이제는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덕후로세. 그래도 아직 오덕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1-2덕 정도라는 데에 안심하도록 하자.


챙겨보는 아니메 :

  • 하늘의 소리 (ソラノヲト)
  •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 (とある科学の超電磁砲<レールガン>)
  • 듀라라라 (デュラララ)
  • 하나마루 유치원 (はなまる幼稚園)
  • 너에게 닿기를 (君に届け)

그 중, '너에게 닿기를'은 재미있으면서도 달달한 아니메라 특히 챙겨서 보고 있다. 듀라라라를 뺀 나머지는 자막이 없어도 거의 시청이 가능한 정도이니, 1년가량 돈 들여가며 공부한 일본어 치고는 하찮은 수준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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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같은 어족의 다른 언어를 배우기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몇년간 붙들고 고생하면서 배운 영어는 아직도 제대로 회화조차 하기 힘든 지경인데, 겨우 1년 남짓 한 일본어는 일본 성인이 하는 수준의 대화는 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초등학생 수준의 대화는 가능하고, 어른의 대화도 알아 듣기는 잘 알아 듣는 수준이니, 얼마나 쉬운가! 그렇게 생각해 보면,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 내가 방문한 적이 있는 나라의 국민들이 영어를 잘 했었던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

몽골어도 배우기 쉬울까? ㅎ_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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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공연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Music/Classical 2010. 2. 24. 00:46
실황
으로 이 곡의 전곡 연주를 직접 볼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느정도 수준에 오른 바이올린 독주자라면 꼭 한번씩은 음반을 내는 곡. 그래서 음반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은 곡.

워낙에 많은 '거장'들의 연주에 익숙해 있는 청중들을 상대로 연주해야 하는 곡.

CD 두 장을 꽉 꽉 채우는, 순 플레이 시간만 두시간이 넘어가는 곡.

그래서 전곡을 듣고 나면, 듣는데 기울이는 주의만으로도 피곤하게 되는 곡.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Christian Tezlaff)의 바흐 독주 바이올린곡 전곡 연주라는 LG Art Center 스케쥴을 봤을 때,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곧장 예매를 했다. 가격대비 성능비가 최고인 제일 앞좌석으로.

금일은 그 공연 당일.


첫곡으로 연주된 소나타 제 1 번 (g BWV1001) 에서부터 느껴진 것이지만, 장식음의 사용이 여태 들어본 연주들과는 매우 많이 달랐다. 전반적으로 장식음을 좀 많이 사용한 것 같았다. 리듬 또한 처음 접하는 리듬인데, 이것은 단순한 템포의 문제가 아니라 리듬의 강약, 당김이 근본적으로 다른 연주들과는 달랐다.


'선입견'
이라는 것은 아주 무서운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들을 수십회 이상 청취하는 동안 '이 곡은 이래야 한다. 적어도 이정도의 차이라면 수용할 만 하다' 라는 선입견이 머릿속에 생겨 있었던 모양인지, 오차 허용 범위 내에 들어오지 않는 정보들을 접하니 별안간 뇌 속에서 "어라?" 하는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느낌. "아뿔싸! 테츨라프의 최근 녹음을 구해서 좀 들어 보고 올 것을" 이라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어찌 되었건, 한음 한음 주의깊이 듣고 있는 와중에 어느덧 첫번째 세션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테츨라프 씨는 퇴장을 한다.

LG Art Center 공연장의 울림이 그렇게 풍부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텁텁한 녹차와 같은 맛이 있는 셰링이나 시게티, 하늘하늘하면서도 가련해서 깨질 것 같은 음의 마르치의 연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울림 (정말 울림) 이 나와 버려서, 한편으로는 약간 달달한 음을 듣게 되었다. 어쩌면 레이첼 포저가 교회당에서 연주해서 녹음한 음반의 소리보다 더 울림이 풍부했는지도 모르겠다.


'달린다'
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물론, 늦추어 줄 때는 확실하게 늦추어 주고, pp 도 정말 아련하게 pp 로 표현을 잘 해 주어서 (pp와 템포는 무관한 개념이지만.. ^^;;) 더더욱 '달린다'는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많이 달린 것은 사실이다. "하이페츠 옹도 아니면서... 이렇게 달리다니!"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달렸나?

19:30 에 시작한 공연이 22:10 경에 끝났다. 공연이 끝나고, 담배를 한대 피우고, 지하철 역삼역 아래까지 내려와서 지하철 승차하기 직전에 통화를 했는데, 그 통화 시각인 22:24 에서 대략 담배 한대 피우고, 느긋하게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해서 플랫폼까지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인 15분을 뺀 시각을 공연 종료 시각으로 잡았다. 계산하면, 공연 종료는 대략 22시 10분이 된다.

19:30 부터 22:10 까지 공연. intermission 30 분을 제외하면 플레이 타임은 2시간 10분, 곡간에 나오게 되는 박수, 그치지 않는 박수에 따라 연주자 무대 등장 후 인사 그리고 퇴장, 다시 등장, 박수, 연주 등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는 박수의 시간, 게다가 마지막은 커튼콜을 5번 가량 했으니... 실제 플레이 타임은 2시간이 모자라게 된다.

그럼,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는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리는가?
부족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들의 연주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

Rachel Podger 의 녹음은 139분 --> 약 2시간 20분.
셰링의 녹음은 129분 --> 약 2시간 10분.
마르치의 녹음은 139분 --> 약 2시간 20분
테츨라프의 오늘 공연 --> 2시간 미만. 오차 범위 5분을 고려하더라도 2시간 정도.

어... 엄청나게 달렸다.

특히, 소나타 3 번의 Fuga 부터 이어지는 파르티타 3 번까지는 화장실이 급한가... 싶을 정도로 달렸다. 이처럼 빠른 템포로의 연주는 시대악기 연주의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무지한 자의 헛짐작도 해 본다. 그렇지만, 무작정 달리기만 하진 않았는데, 그것이,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pp 를 정말 정말 잘 표현해서, 완급의 조절이 아주 절묘했다고 할까, 적절했다고 할까, 연주를 할 때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뚜렷이 받았다. "나는 내 의도가 있어서 연주하고 있으니 알아 주시오!" 하고.

훌륭한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서울에 사는 자의 복이 아닌가 한다.


연주자와 불과 3-4미터

오늘의 공연은 좋았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같은 대곡의 연주를 직접, 내 눈과 귀로 보고 들었다는 것에서 감동이었다. 좌석도 맨 앞줄이라 연주자와의 거리는 불과 3-4미터. 운지하는 손가락이 네크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탁 탁' 하고 들릴 정도로 가까운 자리였으니 연주의 생생함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좋았다. 게다가, 연주자의 눈에 곧장 비쳐버리는 자리에 앉아 있으니 움직임 하나, 고개 끄덕임 하나까지도 조심하게 되어 버려서, 2시간이 넘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한번에 피로가 확~ 하고 몰려왔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가장 좋아하는 소나타 3번과 파르티타 3번이 마지막 곡이라 마지막까지 집중이 가능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 준비의 소홀함이었다. 이같이 드물고 좋은 공연을 미리 음반도 들어본다든지 하는 준비를 하고 왔었다면 200% 즐길 수도 있었을 텐데, 우물안 개구리마냥 '이미 수십번 들었고 전곡을 외울 정도인데, 따로 또 들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있겠지' 라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는 실수를 해 버렸다. 아주 많이 아쉬울 따름이다. 돌이켜 교훈으로 삼도록 하자.


아래는 오늘 공연의 곡 편성이다 :

  1. 소나타 1 번 g, BWV 1001
  2. 파르티타 1 번 b, BWV 1002
  3. 소나타 2 번 a, BWV 1003
  4. intermission
  5. 파르티타 2 번 d, BWV 1004
  6. 소나타 3 번 C, BWV 1005
  7. 파르티타 3 번 E, BWV 1006

프로그램 해설지 (3,000 원이나 했다. 다른 공연의 프로그램에 비하면 싼 편인가?) 에 의하면, 연주 순서를 위와 같이 정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J.S.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연주회에서 듣는 것은 대단히 보람있고 감동적인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여정 속에서 형식과 감정이 발전하는 양상은 개개의 곡을 감상하는데 더욱 충실한 의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현인 G 와 g단조 소나타 1번으로 시작하여 b단조, a단조, d단조와 C장조를 거쳐 바이올린의 가장 높은 현인 E를 풍부히 사용하는 찬란한 E장조 파르티타로 마무리를 하면서 바흐는 어둠에서 빛으로의 변모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최정점은 두번째 파르티타의 간절한 d단조 샤콘느를 세번째 소나타 C장조의 장엄한 푸가와 나란히 위치시키는 곳입니다. 이 두 웅장한 악장 사이에는 소나타 3번을 시작하는 아다지오가 마치 주인없는 땅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아다지오는 샤콘느와 동일한 박자와 느린 템포로 쓰여졌으며 샤콘느의 종결마디와 같은 음역으로 시작합니다.

실제로 바흐는 다섯 번째 마디에서 벌써 d단조로 돌아가 버립니다! 첫번째 완전 종지는 g단조로 되어 있습니다. C장조는 지배적인 조성임에도 불구하고 이 악장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을 듯 합니다. 샤콘느의 그늘이 너무도 커서 아다지오 악장이 거의 끝날 때까지도 앞선 4곡이 속한 단조의 세상으로 음악을 계속하여 끌고 가는 듯 합니다. 결국 마지막이 되어서야 마치 마술처럼 푸가가 시작할 수 있도록 하나의 음형이 문을 열어줍니다. 이전에는 바이올린에게 그러한 환희 넘치는 표현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전곡을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어쩌면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다음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여정의 핵심을 알기 위해 d단조 파르티티와 C장조 소나타를 휴지없이 들어보실 것을. 만일 그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샤콘느와 C장조 소나타만이라도...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음반 J.S.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핸슬러) 라이너 노트에서
* 글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이전에 바흐의 바이올린 독주곡에 관해 적어 본 글 : Violin Sonata No.3 BWV 1005, Violin Partita No.3 BWV 1006 / J.S.Bach 그리고 요한나 마르치

:

카핑 베토벤 (Copying Beethoven) / 대푸가 (Grosso Fugue) / 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 그리고, 게리 올드만(Gary Oldman)

Music/Classical 2010. 2. 16. 15:10

2008/08/04 02:57

이 영화를 본 것은 몇달 전의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지금에 와서라도 이처럼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이 영화에서 사용한 음악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웬만큼 서양 고전 음악을 들어 보았다는 사람들도 감상하기 다소 힘들어하는 장르가 있으니 바로 현악 사중주이다. 그래서 서양 고전 음악 깨나 들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누구 현악 사중주가 어쩌고 하는 발언을 할 경우 "아하, 이 분은 음악좀 듣는 분이로구나" 하는 생각들을 대부분 하게 된다. 물론 나처럼 그저 "허영심" 에 몇번 들어보는 경우라든지, 정말 순전히 들어 봤더니 좋아서 좋아하시는 분들은 예외가 되겠다.

베토벤과 관련된 영화들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리 올드만 (Gary Oldman[각주:1]) 주연의 "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

Immortal Beloved

<Immortal Beloved>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논하기에는 내가 가진 식견이 너무나 짧지만, 극장의 큰 화면에서 별들 사이에 아이 베토벤이 누운 가운데, 베토벤 교향곡 9번의 4악장이 흐르면서 아이 베토벤이 별이 되는 장면은 영화를 본지 수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때의 기분이란, Cosmos 에서 칼 세이건 (Carl Sagan) 이 한 아이에게 "You're a part of the Milkyway Galaxy, too" 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기분과 비슷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각각 서로 다른 느낌과 의미들이겠지만, 왠지 그 아이의 표정이 영화의 이 장면과 겹친다.




아무튼, 베토벤의 여러 유명한 곡들로 잘 꾸며진 "불멸의 연인" 과는 달리, "Copying Beethoven" 의 시작은 충격적이다.

시작부터 "Grosso Fugue (대푸가)" 라고 알려져 있는 베토벤 현악사중주 op.133 과 함께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곡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소위 "베토벤 현악 사중주의 결정체", "난해하기가 최고"인 곡으로 평가되는 곡이다 (그렇다고 나도 그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실은, 나는 아무 생각 없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일 뿐).

이 곡은 베토벤의 "후기" 현악사중주로 분류되는 12번 ~ 16번 중 13번(op.130)의 여섯번째 악장으로 쓰여졌지만, 후에 베토벤이 이 곡만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op.133) 독립시키고, op.130 의 6악장에는 무난한 구성의 곡으로 대체시켰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는데, op.133 을 따로 떼지 않고 6악장으로 남아 있을 당시 이 곡 (op.130) 을 비인에서 초연되었을 때, 베토벤은 연주회장에는 참석하지 않고 근처 술집에 있었다고 한다. 연주가 끝나고, 4악장과 5악장(Cavatina 로 많이 알려져 있다)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고 앙코르로 연주해야 했다는 소식을 안나 홀츠(영화에 나오는 그 안나 홀츠인 듯 하다)가 베토벤에게 전했다. 그러자 베토벤은 격노하여 "왜 푸가는 안돼는가" 라고 하면서 청중들을 "천박한 것들"이라고 욕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곡에 대한 베토벤의 애정(?)은 남달랐던 모양이다.

이 곡은 "푸가" 라고 제목이 붙어 있지만, 바로크 시대의 그 "푸가" 는 아니고, "푸가의 형식을 빌린" 혹은 "푸가의 정신에 입각하여" 쓰여진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뭇 전문가들이 "숭고한" "위대한" 등의 수식어를 사용하며 설명하는 곡이다.

이런 대중적이지 않은 곡을 "감히" 영화의 처음에 썼다는 사실이 상당히 신선했다. DVD 를 처음 플레이 했을 때 연주되는 이 곡은 나로 하여금 "헉, 이 곡을?" 이라는 생각을 가지게끔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하게끔 하였다.

그러나 영화 자체는 그다지 큰 임팩트가 없었으며, 오히려 어정쩡한 편집과 연출, 시나리오로 인해 감상시 정신이 많이 분산되는 편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감상하면 적당하겠다.

Copying Beethoven

<Copying Beethoven>



얼마 전 내한해서 공연했던 알반 베르크(Alban Berg) 사중주단의 베토벤 현악 사중주 전집에 수록된 연주로 Op. 133 을 감상해 보도록 하면 좋겠지만... ㅠ_ㅠ 파일이 너무 커서 올라가지 않는다. 96k 로 인코딩을 해도 10MiB 가 넘어간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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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y Oldman in Friends

<프렌즈에서 열연(!)하고 있는 게리 올드만>


Gary : a Picture of my wife... (pause) in your Pack!!
Matt : you went through my Personal Property?!

P 부분에선 거의 침을 뱉(-_-)는 수준의 발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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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16. youtube 에서 동영상을 발견했다. ㅋㅋㅋㅋㅋㅋ

동영상 올린 사람이 퍼가기를 허용하지 않아서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youtube 에서 보라고 나온다. 클릭해서 youtube 에서 보면 된다.



  1. 분명 매우 뛰어난, serious 한 배우인데, Friends 를 보고 나서는 대사를 하면서 자신의 침으로 상대 배우를 샤워 시키는 -_-;;; 이미지가 자꾸만 생각나서 안습이다. (본 포스트 맨 아래 참조) [본문으로]
:

하워드 진 (Howard Zinn) 서거

잡동사니 2010. 2. 11. 23:19

"미국의 양심" 이라고 불리우던 (가만.. 촘스키였던가? -_-;;) 자유주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 (Howard Zinn)의 서거소식을 이제야 접했다. 2010년 1월 27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고 한다.

그 분이 지은 "Declarations of independence (오만한 제국)",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와 같은 책들은 아직도 내 책장에서 읽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래는 NYT에 실린 컬럼이다 :

http://www.nytimes.com/2010/01/30/opinion/30herbert.html?scp=7&sq=zinn&st=cse

"The Power of Myth" 의 저자(인터뷰어)인 Bill Moyers 의 회고 비디오 :



:

신형 27인치 아이맥(iMac)의 소음문제

Computing 2010. 2. 10. 23:47

금주 배송되어 온 27인치 아이맥에서 웅~~~ 거리는 중저음 소음이 나는 것을 눈치챘다. 원래 가지고 있던 흰색 20인치 아이맥에서는 발생하지 않던 증상.

물론 약간 신경써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이지만, 이 화이트노이즈가 가지고 있는 주파수 특성이 저주파이기 때문에, 아이맥과의 거리에 상관없이 방안 가득 웅~~~ 하는 소리가 깔리게 된다.

인지하지 못할 때에는 상관 없으나 일단 인지하게 되면 끊임없이 신경이 쓰이는 법. 신경을 쓰지 않아도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볼 때에도 계속 귀에 꽂히는 중저음의 화이트노이즈때문에 괴로울 정도가 되었다.


아이맥 아래에 책도 깔아 보고, 잠자기로 전환시켜 보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원인으로 짐작되는 것을 찾아 내었다.

새로 구입한 27인치 아이맥의 상단부에 손을 가만히 얹어 보면 미세한 진동을 아주 뚜렷하게 느낄 수 있으며, 아이맥의 본체에 존재하는 이 진동으로 인해 이같은 중저음 노이즈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진동은 하드디스크의 회전에 의한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는 아이맥이 절전 모드로 들어가게 하여 하드 디스크의 전원을 단절시킨 후 마우스를 약간 움직여서 아이맥을 깨워 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아이맥이 깨어난 직후에는 노이즈를 들을 수 없다. 물론, 아이맥에 손을 얹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진동도 없다. 그러나, 파일을 읽는다든지,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든지 하여 일단 하드 디스크에 전원을 공급한 이후에는 예의 그 진동이 시작됨과 동시에 중저음 노이즈도 다시 시작된다. 물론, 가지고 있는 흰색 두부맥에 손을 얹었을 때에는 거의 아무런 진동도 느낄 수 없었다.

일단, 아이맥 아래에 책을 깔았을 때 아무래도 진동이 책상으로 전달되는 강도가 줄어들기 때문인지, 노이즈의 크기가 아주 약간 경감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책 위에 아이맥을 얹어서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귀에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뭐가 그렇게 예민하냐면서 어이없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아이맥을 선택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무소음인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이번에 새로 구입한 27인치 아이맥이 내 첫번째 아이맥이었다면, 이같은 중저음 노이즈가 문제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을 것이나, 회사에서 20인치 알루미늄 아이맥을 사용하고 있고, 주변에 24인치 알루미늄 아이맥도 여러대 동작하고 있으며, 또한 집에서는 3년째 20인치 흰색 두부맥을 사용하고 있는, 어찌 보면 골수 아이맥 유저인 나에게는 기존의 모델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이같은 현상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 현상이 모든 27인치 아이맥의 공통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그저 내 뽑기 운이 나빴던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맥 소음' 이라는 키워드로 구글링을 했을 때,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은 사람을 두명가량 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아이맥 사용자들이 둔하거나, 정상적인 아이맥이라면 이같은 노이즈가 발생하지 않거나인데, 후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내일 출근을 해서 사무실의 조용한 20인치와 24인치 알루미늄 아이맥에서도 예의 그 진동을 발견할 수 있는지 체크해 보고, 가능하다면 귀찮지만, A# 에라도 들러서 직접 다른 27인치 아이맥을 체크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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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후 확인해 보니, 집에 있는 27인치 아이맥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사무실의 24인치 아이맥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비하면 지진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교환해야겠군.

귀찮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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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3일 업데이트

지금까지 살펴 본 27" 아이맥이 모두 6대가 되었다. quad core 1T 3대, quad core 2T 1대, dual core 1T 2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저음 노이즈와 앞면 떨림이 있었다.
환불받고 새로 구입한 녀석이 그나마 중저음 노이즈가 좀 덜해서 대충 compromise해서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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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mac.squeaked.com/index.php


:

The danger of a single story

잡동사니 2009. 10. 26. 14:49

Chimamanda Adichie: The danger of a single story


I'm a story teller. And I would like to tell you a few personal stories about what I'd like to call the "danger of the  single story". I grew up in a university campus in eastern Nigeria. My mother says that I started reading at the age of 2, although I think 4 is probably closer to the truth. So I was an early reader, and what I read were British and American children's books. I was also an early writer. And when I began to write at about the age of 7. Stories in pencil with crayon illustrations that my poor mother was obligated to read. I wrote exactly the kinds of stories I was reading. All my characters were white and blue eyed. They played in the snow, they ate apples, and they talked a lot about the weather, how lovely it was that the sun had come out. Now, this, despite the fact that I lived in Nigeria, I had never been outside Nigeria. We didn't have snow, we ate mangos, and we never talked about the weather because there was no need to. My characters also drank a lot of ginger beer because the characters in the British books that I read drank ginger beer. Never mind that I had no idea about what ginger beer was. And for many years afterwards, I would have desperate desire to taste ginger beer. But that is another story.

What this demonstrates, I think, is how impressionable and vulnerable we are in the face of a story, particularly as children. Because all I had read were books in which characters were foreign, I had become convinced that books, by the very nature, had to have foreigners in them, and had to be about things with which I personally could not identify.

Now, things changed when I discovered African books. There weren't many of them available, and they weren't quite as easy to find as the foreign books. But, because of writers like Chinoachi(?) and Commalali(?), I went through a mental shift in my perception of literature. I realized that people like me, girls with skin, the color of chocolate, whose kinky hair could not form ponny tails could also exist in literature. I started to write about things I recognized. I loved those American and British books I read, they _____ my imagination and opened up new worlds for me. But their unintended consequence was that I did not know people like me could exist in literature. So what the discovery of African writers did for me was this: It saved me from having a single story of what books are.

I come from a conventional middle class Nigerian family. My father was a professor, my mother was an administrator. And so we had, as was the norm, live-in-domestic-help who would often come from nearby rural villages. So the year I turned 8, we got a new house boy. His name was Fiddy. The only thing my mother told us about him was that his family was very poor. My mother sent yams and rice and old clothes to his family. And when I didn't finish my dinner, my mother would say, "Finish your food. Don't you know people like Fiddy's family have nothing?" So I felt enormous pity for Fiddy's family. But one Saturday we went to village to visit. And his mother showed us a beautifully patterned basket made of dyed raffia that his brother had made. I was startled. It had not occurred to me that anybody in his family could actually make something. All I had heard about them was how poor they were so that it had become impossible for me to see them as anything else but poor. The poverty was my single story of them.

Years later, I thought about this when I left Nigeria to go to university in the US. I was 19. My American roommate was shocked by me. She asked where I had learned to speak English so well, and was confused when I said that Nigeria happened to have English as its official language. She asked if she could listen to, what she called, my "tribal music", and was consequently very disappointed when I produced my tape of Maria Carrie. She assumed that I did not know how to use stove. What shocked me was this: she had felt sorry for me even before she saw me. Her default position toward me as an African was kind of patronizing, well-meaning pity.

My roommate had a single story of Africa. A single story of catastrophe. In this single story, there was no possibility of Africans being similar to her in any way, no possibility of feelings more complex than pity, no possibility of connection as human equals.

I must say that before I went to the US, I didn't consciously identify as African. But in the US, whenever Africa came up, people turned to me, never mind that I knew nothing about places like Namibia. But I did come to embrace this new identity, and in many ways I thinks of myself now as an African. Although I still get quite _______ when Africa is referred to as a country. The most recent example being my, otherwise wonderful flight from Ligos(?) 2 days ago, in which there was an announcement on the Virgin(?) Flight about their charity work in India, Africa and other countries.

So, after I had spend some years in the US as an African. I began to understand my roommate's response to me. If I had not grown up in Nigeria, and if all I knew about Africa were from popular images, I too would think that Africa was a place of beautiful landscapes, beautiful animals and incomprehensible people fighting senseless wars dying of poverty and AIDS, unable to speak for themselves, and waiting to be saved by a kind white foreigner. I would see Africans in the same way that I as a child had seen Fiddy's family.

The single story of Africa ultimately comes, I think, from western literature. Now, here's a quote from the writing of a London merchant, called John Locke, who sailed to West Africa in 1561 and kept a fascinating account of his voyage. After referring to the black Africans as beasts who have no houses, he writes,

"There are also people without heads having their mouths and eyes in their drests."

Now I've laughed every time I've read this and one must admire imagination of John Locke.

But what is important about his writing is that it represents the beginning of a tradition of telling African stories in the West, a tradition of ___________ Africa as a place of negatives, of difference, of darkness, of people who, in the words of the wonderful poet, Rodger Kippling, a half devil, a half child. And so, I began to realize that my American roommate must have throughout her life seen and heard different versions of the single story.

I also had a professor who once told me that my novel was not authentically African. Now I was quite willing to contend that there were number of things wrong with the novel that it had failed in a number of places. But I had not quite imagine that it had failed in achieving something called African authenticity. In fact, I did not know what African authenticity was. The professor told me that my characters were too much like him, an educated middle class man. My characters drove cars, they were not starving, therefore they were not authentically African.

But I must quickly add that I too am just as guilty in the question of the single story. A few years ago I visited Mexico from the US. The political climate in the US of the time was tense, and there were debates going on about immigration, and as often happens in America, immigration became synonymous with Mexicans. There were endless stories of Mexicans as people who were _______ the health care system, sneaking across the border, being arrested at the border, that sort of thing.

I remember walking around in my first day in G______, watching the people going to work, rolling up the _______ as in the market place, smoking, laughing. I remember first feelings like surprise and then I was overwhelmed with shame. I realized that I have been so imersed in the media coverage of Mexicans that they had become one thing in my mind, the object immigrant. I had ______ into the single story of Mexicans, and I could not have been more ashamed of myself. So that is how to create a single story: show a people as one thing, as only on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that is what they become.

It is impossible to talk about single story without talking about power. There is a word, an I___ word, that I think about whenever I think about the power structures of the world and it's ___ "uncalli". It's a noun, that loosely translates to 'to be greater than another'. Like economic and political worlds, stories too are defined by the principle of "uncalli". How they are told, who tells them, when they are told, how many stories are told are really dependent on power.

Power is the ability not just to tell the story of another person, but to make it the definitive story of that person. The Palestenian poet Murri Ba____ writes that if you want to dispossess a people, the simplest way to do it is to tell the story and to start with secondly. Start the story with errors of the native Americans and not with the arrival of the British, and you have an entirely different story. Start the story with the failure of the African states, and not with the colonial creation of the African states, and you have an entirely different story.

I recently spoke at a university where a student told me that it was such a shame that Nigerian men were phisical abusers like the father character in my novel. I told him that I had just read a novel called "American psycho", and that it was such a shame that young Americans were serial murders. Now, obviously I said this in a _____ mild irritation, but it would never have occurred to me to think that, just because I had read a novel in which a character was a serial killer, that he was somehow a representative of all Americans. And no, this is not because I'm a better person than that student, but because of America's cultural and economic power, I had many stories of America, I had read ____, Obdyke, and Steinbeck, and _____. I did not have single story of America. When I learned some years ago, that writers were expected to have had really unhappy childhoods to be successful, I began to think about how I could invent horrible thing my parents have done to me. But the truth is that I had a very happy childhood, full of laughter and love in a very close-knit family.


(( 자막이 없어서 받아쓰기를 짬짬이 하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자막이 나왔다. 그래서 받아쓰기 한 데까지만 수정 없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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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 like the great conductors / 마에스트로 카를로스 클라이버

잡동사니 2009. 10. 22. 23:33



오늘자 TED.COM podcast 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올라왔다. 출근하면서 보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출근 후에도 한동안 실실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게다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생각해 보게끔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기에 이처럼 기록해 둔다.

맨 처음 나오는 지휘자는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마에스트로 카를로스 클라이버이다.

마에스트로가 지휘하는 장면울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처럼 생동감있게 지휘를 하는 사람이었으니 내가 이전에 적었던 포스팅에 나온 사진과 같은 얼굴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앨범 표지에 있는 마에스트로의 사진을 한번 더 확인해 보자.


다시 보아도 '나는 내가 연주하는 이 음악이 즐겁고, 좋아서 미치겠다' 는 얼굴을 하고 있는 마에스트로. ㅎㅎ


"리더" 가 가져야 할 자질에 대해 위대한 지휘자들의 예를 들면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리카르도 무티, 카라얀, 게오르규 솔티, R. 슈트라우스, 레너드 번스타인...

그러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인, "리더" 는 조직원들을 신뢰해야만 하며, 적절한 피드백도 주어야 하고... 등등등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마치 무티가 지휘하는 것 처럼 "dominating" 하는 방법으로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잠시라도 눈과 귀를 다른데로 돌릴 수 없도록 적절한 유머를 사용해서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 즐거운 오전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이 사람 (Itay) 이 청중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은 자신이 이야기하는 주제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청중을 "지배" 하지 않으면서 "지배" 하고 있으며, 청중이 즐길 수 있게끔 정말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He practices what he preaches... 라고나 할까..

후반부에 나오는 클라이버의 지휘 장면 (솔리스트의 연주를 감상만 하고 있는 듯 한 장면) 과 마지막에 나오는 번스타인의 하이든 연주 장면은 놀랍기까지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하는 것을 감상만 하고 있는 듯... (( 검색을 좀 해 보니 클라이버도 종종 그랬다고 한다.

이 비디오를 보고서 한번 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내가 지휘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아이도 생기고 (우선 결혼부터 해야... ㅠㅠ) 가정도 생길 테니, 마에스트로 클라이버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것 처럼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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