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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30 오늘 2
  2. 2009.04.30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 2
  3. 2009.04.20 로마인 이야기 -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이병박 이명박 가카 3
  4. 2009.04.15 resilient society
  5. 2009.04.10 cdecl
  6. 2009.04.08 負けないで / ZARD
  7. 2009.04.03 oracle 의 online log file size 조절하는 법
  8. 2009.03.30 OSX 의 X11 윈도우를 띄우면서 포커스도 새 창에 맞춰 주기

오늘

잡동사니 2009. 4. 30. 03:14

오늘, 난 내 인생에 있어서 여태껏 해 본 적이 없는 "용감한" 행동을 했다. 그래서 그 행동의 결과에 상관 없이 그러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뿌듯한 기분이다.

그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듣게 된다면, 듣는 사람은 십중팔구 "애걔, 겨우 그거?" 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소심하게 한 행동이지만, 나에게는 그 정도도 상당이 오랜 시간 망설이고 주저한 끝에 한 것이기에 아주 크게 느껴진다.

그게 어떤 행동이었는지는, 비밀!

알고 싶으면 전화로 물어봐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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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

Books 2009. 4. 30. 02:11

나에게 "유시민"이라는 사람은 두가지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나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에서 약간은 달뜬 어조로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자신이 보는 각도에서 이야기해 주는 생각이 깨어 있는 아마추어 역사학도의 얼굴이며, 또 하나는 지난 정권의 실패한 정치인의 얼굴이다. 물론, TV 라는 매스미디어와 동떨어진 채 살고 있는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가 정치판에 뛰어들기 이전에 TV 에 비쳤던 얼굴은 알지 못한다.

그가 정치를 하는 동안 간간이 들리던 그에 대한 좋지 않은 평들과, 속된 말로 "네가지 없다"는 평들은 그의 저술물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나에게는 의외의 일로 다가왔으며, 한편 많이 의아해 하기도 했었으며, 실망하기도 했었다. 내맘대로 한 사람에게 기대를 했다가 실망을 하는 종류의 일이 참으로 헛되고 무의미한 일이며, 심지어 옳지 않은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최근 가카의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이 거의 없어지더니 얼마 전 책을 내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호평 또한 접할 수 있었기에 한권을 구해서 읽어 보았다.

후불제 민주주의

<<네24의 이미지임>>


이 책에 주어지는 여러 사람들의 호평은 아마도 이 책이 사람들이 느끼는 현재의 시국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기에 대중으로부터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는 데 기인하였으리라 짐작한다. 나 자신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굳이 지적하는 수고를 하시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정치가" 유시민이 아닌 "깨어있는 사람" 유시민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나는 참으로 반갑고 즐거웠다.

이 책을 읽고서 '우리나라의 헌법이 이처럼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서 좋았다' 라든지, '헌법에 대해 재조명했다' 라든지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의 전반부의 매력은 헌법에 있는 국민의 여러가지 기본적인 권리들과, 명기해 두고 있는 법제장치 등을 유시민만이 할 수 있는 것 처럼 보이는 특유의 시각에서 현재의 우리나라의 시국과 절묘하게 비교되게끔 기술해 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글로써 적어 내는 것은 어렵다.) 다시 말하자면, 책에서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는 헌법에 "그러한 내용도 들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 보다는, 유시민선생의 글들에서 드러나는 그의 사물을 보는 시각을 확인할 수 있어서 얻는 즐거움이 나에게 있어서는 더 컸다는 이야기이다. (무슨 말인지... -_-);;


유시민선생(그렇다, "선생"이라고 감히 칭해도 되겠다)이 서문에서 책의 이름을 "후불제 민주주의" 라고 짓게 된 이유를 밝혔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붙일만한 참으로 적절한 수식어가 아닐 수 없다. 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후불제"인지는 누구나 잠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터, 굳이 여기서까지 설명하지는 않겠다. 책을 한권 구해서 읽어 보시면 되겠다.


책의 전반에 걸쳐서 느껴지는 문체는 예전의 "거꾸로..." 에서의 선동적인 것이 아니라, 실패의 쓴 경험까지도 자기 안에서 성공적으로 융화시켜 내어서 더 깊이있는 사람이 된 인물이나 보여 줄 법한 상당히 차분한 문체였던지라, 오히려 더욱 더 호소력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언뜻언뜻 비치는 정치인이었던 시절의 회한(?)을 이야기하는 부분에는 쓸쓸함까지도 묻어나 이 사람이 예전의 그 유시민인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게 했다. 역시 고난과 시련, 그리고 실패의 고배는 사람을 한층 더 담금질하여서 성장시키는 모양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유시민이 가진(가지고 있으리라 짐작되는) 열려 있는 사고방식과 눈을 통해서 본 사회 현상을 기술한 글이기 때문에 읽는 내내 즐거웠으며, 나도 그와 같은 "개방된 마음" 을 가져야지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또한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여지껏 살아 오면서 견지해 왔던 태도들과 언행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끔 해 주는 부수적 효과도 발휘했다.


아마도 이러한 종류의 글을 읽는 목적은 글을 읽고서 마치 자신의 생각을 누군가가 대신 말해 주는 것인 양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저자가 대신) 정리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의 즐거움과,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공감"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즐거움을 충분히 선사해 준다.

물론,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 또한 비판적인 시각에서 읽어야 하겠지만, 솔직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 또한 편향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우연히 저자의 시각이 내 시각과 일치하는 면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 살면서 현재 시국을 개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긴다면, 청소년기에 사물을 보는 균형잡힌 시각 형성에 도움이 되도록 반드시 읽어 보도록 권할 책들의 목록 중에 홍세화선생의 책과 함께 이 책이 들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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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필에 횡설수설이다.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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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이병박 이명박 가카

Books 2009. 4. 20. 22:41

요즈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를 짬짬이 다시 읽어 보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제 5 권, "율리우스 카이사르 - 하" 를 읽고 있다. 역사서를 읽게 되면 현재의 우리가 처해 있는 모습들을 돌이켜 보게 되는 모양이다. 정치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던 어릴적에는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었지만, 요즈음은 시국도 시국이려니와, 어느 분께서 참으로 많은 아름다운 일들을 저지르고 계시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한결 더 책에서 그려지는 "천재" 정치인인 카이사르에 대해 고개가 주억거려질 수 밖에 없나 보다.

특히 오늘 읽었던 부분 중에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발췌하자면,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관용정신을 거부하고 자결의 길을 택한 카토를 칭송하는 "카토"를 간행했다. 그러자 카이사르는 이 책이 세간에 주는 영향을 염려하여 "안티 카토"라는 제목의 반론을 발표했다. 키케로의 "카토"를 판금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반론을 쓰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종신 독재관에 취임한 기원전 44년 2월 이후에도 밤이면 포로 로마노 건물벽에 카이사르를 비난하는 대자보가 나붙었지만, 그는 필자를 추적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 카이사르는 '살생부'를 만드는 것조차도 거부했다.... (자신에 대항해 전쟁까지 치루었던 반대파의 사람들에게도) 귀국을 허락하고, 본국에서 옛날처럼 사는 것을 허락하고, 전과 마찬가지로 원로원 의석도 주었다.... - 제 6 장 "원숙기" 중 "불만을 품은 사람들" 가운데서 발췌.

물론, 카이사르이기 때문에, 역사에 남은 뛰어난 정치인이기 때문에 이와같이 반대파의 사람들이 뭘 하든 용인하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항상 '자신이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게 행동하도록 노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또한 그 사람의 신념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록 그 신념이 자신의 신념과 다르더라도 그것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당연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인가.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언론사에 관여를 하고, 압력을 행사하며, 인터넷 실명제를 하고, 단순한 인터넷 논객에 지나지 않는 미네르바라는 사람을 잡아 들이는 등 고대의 저 정치가와는 참으로 극적인 차이를 보이는 정치를 하고 계신다.

그렇게나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자신이 없을까?

내, 가카께서 하신 일들 중, 서울시 버스전용차선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거기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 결정과 이행이 독단적으로, 충분한 설득과 이해의 과정 없이 "강행" 된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의 대운하도 그렇다. 벌써 소리 소문 없이 첫삽을 뜬 것처럼 보인다.



역시, 내 글에는 논점이 없다. 또다시 삼천포로 빠지고 말아버렸는데, 아무튼,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한심하고 우울하기 그지없다." 라는 게 요점이다. 글쓰기와 생각정리의 연습을 더 해야겠다.


우리가 국민학교때 배웠던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는 다 개소리란 말인가? -_-;; 차라리 계엄령을 선포하지.


-- 그분의 퇴임까지 1703일 남은 2009년 4월 20일 밤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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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ilient society

English 2009. 4. 15. 10:12

뉴스를 듣다가 갑자기 어떤 단어가 자주 들릴 때가 가끔 있다. 이 때가 바로 그 단어를 알아보기 아주 좋은 때이다. 여러번 듣고, 어떤 뜻인지 궁금해 하기를 몇번 반복하다가 찾아보면 뜻과 함께 단어 자체가 아주 선명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또 그런 일이 있었는데, Obama 가 "이 난국을 잘 헤쳐 나가자" 는 취지로 연설을 할 때라든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돕는 것과 관련된 기사 내용 등에서 갑자기 자주 들리는단어가 있었으니, resilient 라는 단어이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reference.com 의 정의임)


re⋅sil⋅ient

[ri-zil-yuhnt, -zil-ee-uhnt]
     1.
springing back; rebounding.
     2. returning to the original form or position after being bent, compressed, or stretched.
     3.
recovering readily from illness, depression, adversity, or the like; buoyant.


탄성, 탄력적인, 그런 유형의 뜻인 것 같다.

그런데, 이것 만으로는 어감이 잘 오지 않는다. 여기에 "society" 가 붙으면..? 음..

그래서, 구글신께 여쭈어 보았다.

http://www.google.co.kr/search?q=resilient+society&ie=utf-8&oe=utf-8&aq=t&rls=org.mozilla:ko:official&client=firefox-a

어휘의 개념을 잡는 데 도움이 될만한 예제를 몇가지 나열해 보면,

http://communities.canada.com/vancouversun/blogs/birdwatch/archive/2009/02/24/imagine-a-resilient-society.aspx

http://www.city-journal.org/2008/18_1_homeland_security.html

그렇다. 재해나 재난이 있을 때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나서서 서로를 돕는, 그런 사회? 여기에 딱 맞는 우리말 단어는 없다. 개념 자체가 없어서 그럴려나? 아무튼, 위의 두 기사를 읽어 보면 단어의 개념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물리나 공학 쪽에서는 "탄성" 이라는 뜻 그대로 쓰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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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ecl

Computing 2009. 4. 10. 18:17

Ever had a hard time deciphering a wierdly written C declaration? Did you end up scratching your head, saying "Who on earth would write codes like these?!"

Here's a wonderful solution to it : cdecl.

Cut to the chase. Get a brief look at how it works :

$ cdecl
Type `help' or `?' for help
cdecl> explain int (((*a)[3][4]))
declare a as pointer to array 3 of array 4 of int
cdecl> explain int (((*a)[3][4])(void))
declare a as pointer to array 3 of array 4 of function (void) returning int
cdecl> declare a as pointer to array 4 of pointer to function (int) returning void
void (*(*a)[4])(int )
cdecl>

Oh, my god! It's exactly what I was looking for!


:

負けないで / ZARD

Music/Others 2009. 4. 8. 02:16


요즘 坂井泉水様 의 zard 를 계속 듣고 있다.


3개월 일본어를 배운 것도 배운 거라고 하면 가소롭다고 웃으시겠지만, 그래도 가사가 일부분이지만 귀에 막 들어온다. +_+))


노래가 새롭다. 이런게 인생에서 또 놓칠 수 없는 재미 되겠다. 하나씩 배워 가는 재미? 흐~


쩝.. 이제 별 생각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연주곡이나 쭝국노래, 제3세계 음악 뿐인가...; ((네, 자랑입니다 :-p 재수없나요? ^^;;;




이즈미누님의 6번째 싱글 타이틀곡이다.


負けないで


단순히 직역하자면 "지지 치지 마" 정도가 되겠지만, 정말 그렇게 번역하는 일본어 번역가가 있다면 때려 줄 테다. 단순한 "지지 말라"는 의미 이상의 의미가 저 일본어 한마디에 있다는 느낌이... 수많은 애니메이션을 섭렵하다 보면 생긴다. 그런데, 또 난감한 것이, 이걸 "지지 말라"는 것으로 번역하지 않으면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했을 때 "지지 말라"는 것 외에는 딱히 답이 없다. 번역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윤기선생을 좋아한다.


가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도 그 멜로디와 리듬은 참으로 좋은데, 가사를 알고 들었을 때, 그 맛은 또 다르다. 재발견하는 zard 의 노래들. 새롭다. 다음번에는 히로스에 료코(広末涼子)의 앨범도 다시 들어 봐야겠다.










歌詞


ふとした瞬間に視線がぶつかる
幸運(しあわせ)のときめき 覚えているでしょ
パステルカラーの季節に恋した
あの日のように 輝いてる 
あなたでいてね

負けないで もう少し
最後まで 走り抜けて
どんなに 離れてても
心は そばにいるわ
追いかけて 遥かな夢を

何が起きたって ヘッチャラな顔して
どうにかなるサと おどけてみせるの
”今宵は私(わたくし)と一緒に踊りましょ”
今も そんなあなたが好きよ 忘れないで

負けないで ほらそこに
ゴールは近づいてる
どんなに 離れてても
心は そばにいるわ
感じてね 見つめる瞳

負けないで もう少し
最後まで 走り抜けて
どんなに 離れてても
心は そばにいるわ
追いかけて 遥かな夢を
。。。




http://izumi-sakai.net 의 가사를 참조해서 내가 다 타이핑 한 것이지롱 +_+))) 웬만하면 번역기에는 넣지 말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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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cle 의 online log file size 조절하는 법

메모 2009. 4. 3. 19:27

SQL> alter database add logfile '/home/shawn/work/mdw/integrator/test/ora1/dbs/slog1.dbf' size 4m;
SQL> alter database drop logfile '/home/shawn/work/mdw/integrator/test/ora1/dbs/log1.dbf'
SQL> select * from v$log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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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X 의 X11 윈도우를 띄우면서 포커스도 새 창에 맞춰 주기

Computing 2009. 3. 30. 15:21

macosforge 에서 최신 X11 을 받아서 설치하면 된다.

한글 리소스가 추가되어 있지 않으므로 X11.app 의 "정보 보기" 에서 사용 가능한 언어에서 "한국어" 를 삭제해 주면 설정 창에 못보던 항목들이 나온다.

이 항목들 중에 윈도우를 열면서 포커스도 함께 주도록 하는 항목이 있다.

사무실의 동료인 전** 님이 가르쳐 주신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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